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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 3. 2. 09:26 삶의 한때/기억의 한때

"일기의 중요성은 그 무의미에 있다. 바로 거기에 일기가 갖는 경향과 법칙이 있다. 매일매일 그 하루하루의 보증 하에서 스스로에게 이 하루하루를 환기시키기 위해 글을 쓰는 것은 침묵을 벗어나고 입말 속에 있는 극단적인 것을 벗어나기 위한 편리한 방법이다. 매일매일은 우리에게 무엇인가를 말한다. 기록된 매일매일은 모두가 보존된 매일매일이다. 이것은 유리한 이중작용이다. 그래서 사람은 두 번 산다. 그래서 사람은 망각으로부터도, 말해야 할 그 무엇도 없다는 절망으로부터 자신을 보호할 수 있다."

_모리스 블랑쇼, <도래할 책>(심세광 옮김)


2010년 8월 26일에 긴 트윗으로 어딘가 날려보낸 문장들이 유령처럼 갑자가 나타났다. 대학원 시절까지는 매일매일, 혹은 하루에도 몇 번씩 일기를 썼다. 일기장 첫 페이지마다 그 일기장의 어떤 제목이 있고, 시작한 날짜와 끝낸 날짜를 적었고, 일기장 표지에는 번호를 적었다. 매일의 일기는 날짜와 요일을 쓰고, 일기를 쓴 시각과 장소, 그리고 그 순간 내가 들은 소리(라디오, 음악, 어떤 소음, 주변 사람들의 대화, 수업시간 중에는 교수의 강의하는 목소리 등등)의 종류를 적었다. 딴 생각을 많이 하는 내 습관은 그렇게 강화된 듯싶다. 그렇게 쓴 일기들은, 한두 달에 한번쯤 뒤로 돌아서 몰아 읽으면서, 내 결심이 지켜졌는지, 혹은 사람들에 대한 내 관찰이나 판단이 옳았는지 틀렸는지, 내 일기에 내가 다른 색깔 펜으로 주석을 달기도 했다. (가끔은 그 작업이 두세 번 이어졌기에, 지나간 일에 대한 기억이 아주 선명해서, 주변 사람들은 내 기억력이 아주 좋은 줄 알고 있었다. 복습한 건데~~) 그렇게 해서 적은... 대략 이십몇 번까지의 일기장(주로 들고다니기 좋은 중학생용 공책에 씀)이 부모님 사시는 시골집 내 책장에 여전히 자리한다. 

그런데 석사논문 쓰기 전쯤인가, 일기를 너무 열심히 쓰다 보니, 너무 나한테만 집중하거나 자기연민이 심해지는 것 같아서 (생각해 보니 일기가 무슨 탓이랴, 일기 외에는 솔직하지 못했던 소심함과 그에서 연유한 삶에 대한 불만 때문이겠지) 그만 두고 나중에는 생각날 때만 썼다. 그러다 보니 한 달에 한 번도 쓰고 계절에 한 번도 쓰고 그런 듯싶다. 그래도 30대 초반까지는 일기장이란 종이로 된 공책을 한 권 가지고 있었다. 이제는 일기장을 만들지 않고, 그때그때 sns에 적거나 조금 길게 적은 글들은 블로그에 보관해서 생의 한때들을 기록해 나간다. 그것이 어떤 때는 일기일 수도 있고, 그저 마음의 풍경일 때도 있고, 읽은 시일 수도 있고, 차마 산문적 주체로서 고백하지 못하는 정념들을 시처럼 적기도 한다. 

일기 생각을 다시 하다 보니, 싸이월드 미니홈피의 일기장에 가끔 짧은 단상을 남기던 것은 정말 일기는 아니었구나 싶다. 정확히 언제인지는 모르겠지만, 일기를 좀처럼 쓰지 않던 기간의 나는 어떤 인간형의 모델을 재현하려고 더 애를 썼는지도 모르겠다. 이를테면, 신입 편집자 시절이라든가... 


고백하는데, 실은 한기호 출판마케팅연구소 소장님이 블로그에 쓰시는 일기의 애독자이다. 출판에 대한 관심 때문에 읽기보다는, 그냥 그렇게 그날그날 일기를 쓰시는 게 신기하고, 한 사람의 일기를 따라 읽는 맛이 있다. (매일 읽지는 못하고, 제목이 재미있는 일기가 있을 때 들어가서 그 근처의 몇 편을 읽고 나오지만...) 한기호 소장님도 일기가 그 지치지 않는 열정의 원천일지도 모르겠다. 

posted by amieda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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