앤트로픽이 수학계에 저지른 만행 때문에 수학의 최전선에 있던 세계 최정상급 수학자들마저 멘붕이 와서 울었다는 소식을 접하고... 그 길은 10년 전에 바둑에서 이세돌 9단이 겪은 막막함이고, 이제 분야별로 뛰어난 사람들이 계속 겪을 고통인데...수천년간 평범한 사람들이 천재들을 바라보며 겪는 곤란을 지금 석학들이 겪는지도 모르겠다. 물론 충격을 소화하려면 상당한 시간이 필요하다.
그렇다고 그 고통을 폄하하는 게 아니라, 결국 평범한 사람들이 천재와의 비교를 관두고 자신의 일을 하고, 자신의 성취를 이루듯이 할 수밖에 없지 않나? 결국 남보다 잘 못하더라도, 포기하지 않고 내 손으로 직접 하고 싶은 어떤 일, 수학으로 치면, 이미 AI가 풀었지만, 또 다른 방법의 풀이를 시도해 본다든가... 이번 주에 9쪽짜리 글을 하나 번역했고, 초벌 마친 후 클로드ai에게 다시 읽혔다. 클로드가 오류 10개를 지적했는데, 그 10개 중에 나는 또 클로드ai의 오류 1개(종속절 주제를 잘못 찾음)를 잡아냈다. 지지 않은 기분이 들어, 약간 후련했다. 인간도, 기계도 완벽하지 않다. 오류를 줄여나갈 뿐이다. 이 흔한 공리를 마음으로 받아들이는 데 50년이 걸렸다. 
오늘은 나의 50번째 생일이다.
생일 기념행사(?)로 동생이랑 영화 <이방인>(프랑수아 오종 감독, 알베르 카뮈 원작)을 보았다. 난 아직 카뮈의 그 유명한 소설을 보지 않았는데, 주체에게 의미 없던 타자의 죽음 뒤에 주체의 의미 찾기 여정이라는 뜻에서 지난 달에 본 <오디세이>와 겹쳐 보인다. 오디세우스는 기억 상실이고, 뫼르소는 감정 상실인데... 어느 쪽이든 '나'의 상실이라 할 수 있다. AI의 폭주 앞에서, 또 많은 사람들이 존재 의미의 상실을 느끼고, 스스로에게 이방인이 되는 부조리에 처한다. 
지천명이란 표현에 사람마다 각자 투사하는 다양한 의미들이 있겠지만, AI시대에, 출판과 번역, 연구가 모두 망했다는 목소리를 매일 듣는 시대에, 그 일을 다시 붙드는 나를 보면서... 무슨 영화를 보겠다고... 스스로 한숨을 쉬기보다는, 출판사 창업했다고 이야기를 듣고, 아부지가 나에게 하신 말씀대로, 하고 싶은 일이 있어서 다행이다, 하고 생각해 본다. 이것이 오늘 나에게 나타난 의미이다. 50년을 살아도 여전히 이방인이란 느낌을 지우지 못하는, 이 던져진 세계에서, 내가 나 자신에게만은 이방인이 되지 않는 방법으로 다만 잠시라도 이 하나의 흔하디 흔한 진실을 붙들어 본다. 

Posted by amisda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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