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7년 5월 프랑스 대선을 앞두고, 프랑스의 사회과학자·법학자들이 모여 연속 세미나를 연다는 소식. 이름은 « Après mai 2027 – Fictions prospectives pour penser l'avenir démocratique »(2027년 5월 이후 – 민주주의의 미래를 생각하기 위한 전망 픽션). 사회학자 도미니크 메다 등이 함께 기획했다. 대선 결과를 예측하지도, 어떤 공약을 옹호하지도 않겠다고 한다. 대신 매회 지금의 프랑스에서 살짝 비틀린 가상 시나리오를 세우고, 이야기를 여러 갈래로 나눈 다음, 법·역사·정치학·사회학·경제학으로 검증해본다. 그렇게 해서 민주주의가 안고 있는 딜레마를 드러내겠다는 것이다. 첫 회 시나리오는 기권율이 높은 대선 뒤에 과반 없는 의회가 들어선 프랑스. 질문은 "선출되는 것만으로 여전히 통치할 수 있는가?"
2010년 거의 무너질 뻔했던 한국 민주진영이 살아나려 몸부림치던 모습이 떠오른다. 2010년 『진보집권플랜』(조국·오연호) → 2011년 초 미국 무브온(MoveOn)에서 영감을 받은 시민정치행동 '내가 꿈꾸는 나라' 결성 → 2011년 후반 '혁신과 통합'이 문재인을 내세우기까지. 그 역사를 프랑스판으로 다시 보는 기분이다.
프랑스도 지난 10년 동안 중도좌파가 거의 무너졌다가 요즘에야 반성하며 몸부림치는 중이다. 2011년의 문재인처럼, 교양 있고 인품 좋으나 행정 경험은 없는 라파엘 글뤽스만(엘리트 출신 유럽의회 의원)이 중도좌파 후보로 지지세를 모으고 있다. 그리고 당시 이재명 성남시장처럼, 파리 북부의 가난한 위성도시 생우앙쉬르센(Saint-Ouen-sur-Seine)의 시장 카림 부암란(이민자 후손)이 실용주의 행정가의 실력으로 치고 올라오는 중이다.
프랑스 사람들은 많은 것에 지쳐 있다. 마크롱의 실력 없는 오만함, 경제위기, 2018년 대대적으로 일어났다가 결과 없이 끝난 노란 조끼 운동. 마치 2008년 광우병 반대 촛불이 출구 없이 끝나고 한국 민주진영이 안개 속을 헤맸던 것처럼 말이다. 그 옆에서 사회당을 배신한 마크롱만 욕하며 자기 역사적 정당성만 주장하는 기회주의적인 사회당에 실망했고, 믿을 만한 지도자 없이 이전투구만 일삼는 공화당에도 지쳤다. 그 와중에 코로나 시기에 대안 없이 마크롱이 재선에 성공했다.
아무튼 그런 상황이 거의 10년간 이어졌다. 사람들은 현실 정치에 실망했고, 민주주의라는 말에 대한 신념도 잃어가고 있었다. 그러다 모처럼 믿어도 될 것 같은 정치인이 나온 것이다.
라파엘 글뤽스만이 요즘 하는 일은 좌파의 실패에 대해 인민에게 사과하는 것이다. (여기서 문재인 대통령의 정치 초기 캐릭터와 겹친다.) 그리고 글뤽스만 주변에 결속하는 사람들은 중앙 정치에서 얼굴 내밀기 좋아하던 국회의원들이 아니다. 사회당 소속으로 지자체 행정을 하며 실력을 쌓아온 정치인들이다. 이런 움직임이 함축하는 바는 당연히, 프랑스 중앙정부가 지방을 잘 돌보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다시 메다 선생 등의 세미나 이야기로 돌아오면.
한국이든 프랑스든 미국이든, 선거 때마다 사회과학자와 법학자들이 의견을 내는 건 정상적인 일이다. 그런데 이번에는 어딘가 비장함이 느껴진다. 앞서 말한 첫 회 시나리오는 "살짝 비틀린 프랑스"라고 했지만, 사실상 지금의 프랑스다. 픽션이라는 형식을 빌렸을 뿐, 이미 진행 중인 통치 불능 상태를 정면으로 다루겠다는 것이다.
주최 측은 특정 후보를 지지하지 않는다고 분명히 밝힌다. 물론 모이는 엘리트들은 각자의 판단과 이해관계와 세력이 있고, 이 자리를 거치며 캠페인에 어떻게 개입할지 가늠하게 될 것이다. 그걸 모르고 모이는 사람은 없다. 중립 선언은 오히려 서로 다른 진영이 마음 편히 한자리에 모일 수 있게 하는 조건이다. 그래도 내가 보기에 이 기획의 의도는 분명하다. 국민 전체에게까지는 아니더라도, 적어도 학계와 실무 엘리트들 사이에서 대선 전에 시간을 들여, 우리가 진짜 챙겨야 할 통치의 쟁점이 무엇인지 확인해두겠다는 것이다.
한국을 돌아보게 된다. 한국의 정치 보도는 정치인들 사이의 계파는 열심히 다루지만, 담론이 만들어지는 곳과 실제 정치가 어떻게 이어지는지는 잘 보여주지 않는다. 학계 안에서는 다 아는 연결이 바깥에서는 모든 것이 여론조사로 결정되는 것처럼 보인다. 선거철에 지식인과 셀럽들이 지지 후보를 밝히기도 하지만, 거기엔 정책적 선택의 내용이 없다. 사람이 괜찮고 능력이 있다는 것뿐이다.
프랑스는 지식인이 어떤 정책에 동의했고 어떤 정책에 반대했는지를 낱낱이 기록으로 남긴다. 그리고 선거를 앞두고 지식인들이 이름이 아니라 질문을 내놓는다. 제도로서의 민주주의가 무엇을 해야 하고 무엇을 하지 말아야 하는지, 재확인이든 재설계든 이렇게 꾸준히 묻고 기록하는 일이 쌓여야 비로소 사회 전체에 교육적 효과가 생긴다고 나는 생각한다.
2011년 한국의 몸부림은 후보를 세우는 데까지는 갔지만 이기지 못했고, 그 뒤로 오래 기다려야 했다. 프랑스의 몸부림은 어디까지 갈까. 적어도 이번에는 선거 다음 날을 미리 묻는 사람들이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