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 4. 23. 05:27 삶의 한때/기억의 한때

어제 저녁 파리에서 귀하게 마련된, 세월호 10주기 기념 영화 <바람의 세월> 상영회에 다녀왔다.

(아직 안 보신 분들께 귀뜸하자면, 영화가 잘 만들어졌습니다. 주제의 중요성이나 사건 기록으로서의 의미를 넘어서서, 영화 그 자체로서, 시간과 에너지를 들여 볼 이유가 충분히 있는 영화였습니다.)

영화를 보고 내가 느낀 점을 망각하기 전에 몇 줄 적어두려 한다.

철저한 진상 규명이나, 생명 안전법 통과 등이 안 되고 있는 일도 이상하지만, 그런 결과들이 언젠가 드디어 나타난다면, 유족들이 그동안 받은 상처와 서러움이 조금이나마 씻기기는 하겠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 애도가 가능할 것인가. 애도는 불가능한데, 그 불가능성 때문에 그분들은 어쩌면 살아갈 힘을 얻는 것인데... 어쩌면, 한국 사회가 가장 먼저 배워야 할 것은, 10년이 지나도록 충분히 배우지 못한 것은, 10년 후든, 20년 후든, 40년 후든, 언제까지가 되었든, 애도하고 싶은 만큼 하고, 형행법상 가능하든, 불가능하든, 유가족들이 원하는 도덕적 요구를 모두 표출할 시민적 권리를 인정하고, 또 그런 표현들이 나타날 떄마다 경청하고, 지지하는 "곁"이 되는 것... 그리고 참가 희생자 가족들에게 고의적인 상처를 주는 혐오 표현을 적극적으로 막는 도덕적 움직임과 법적인 제도화가... 대한민국이라는 국가와 한국 사회가 "민주공화국"으로서 스스로를 정체화하기 위한 최소한의 노력이 아닐까, 생각했다.

바라는 게 너무 소박하고, 영화 감상문이 너무 무기력하게 느껴질지도 모르지만, 그 작은 것을 지켜낼 수 있을 때, 우리가 잃어버린 "사회에 대한 신성함"을 조금이나마 되찾을 수 있지 않을까. 나는 아직도 희망한다.

(더 정리된 글로 쓸 시간과 기운은 없지만, 어제의 여운이 망각 속으로 사라지기 전에 조금이라도 남겨두고, 또 기억하자는 마음으로, "잊지 않겠다"는 약속에 대한 최소한의 진심으로, 오늘의 일기처럼 적어 둡니다.)

posted by amiedame
2023. 8. 14. 22:00 삶의 한때/기억의 한때

어릴 적에 외할아버지(실은 엄마의 계부셨음)가 갑자기 돌아가셨을 때, 부모님이 나에게 잘 설명을 안 해주셔서... 그 죽음을 이해하기가 힘들었다. 그래서 외갓집에 갈 때마다 대청마루에 걸린 할아버지 사진을 똑바로 보지 못하고, 겁을 먹었는데...

오늘 부모님과 같이 퇴근하다가 차에서 갑자기 그 얘기를 하면서... 할아버지는 어떻게 돌아가신 거냐고, 처음으로 물어보았다. 실은 전처 소생의 아드님 관련해서 속상한 일이 있어서 울컥하셨다가, 외할아버지가 스스로 목숨을 끊으신 거라고 했다... 헉, 집안에 무슨 비밀이 이렇게 많아...

내가 겨우 만으로 4살 남짓이었으니까, 설명해 주기 어려운 상황이었다는 것도 이해가 되면서, 내게는 마음 한켠에 무거움으로 남아 있던 엄마에 대한 원망도 흘려 보내본다. 그때 엄마가 겨우 30대 초반... 엄마도 몸이 안 좋고, 아버지는 건강 문제로 실업 중이셨고... 엄마에게 힘든 시절이었겠다.

참, 외할머니도 전쟁에 남편 잃고, 재산 잃고... 초혼에서 낳은 자식들 시댁에 두고, 재혼해서 낳은 자식들 키우며 살림 일구느라 고생 많으셨을 텐데... 두번째 남편도 50대 후반에 황망하게 보내시고... 할머니도 힘드셨겠다... 그 마음의 짐들을 무의식 중에 물려받아 사느라, 나도 힘들었다...

마음을 모아, 진심으로... 오랜만에, 외할머니, 외할아버지의 명복을 위해 기도한다. 평화를 빕니다.

posted by amiedame

오마이뉴스에 올라온 윤찬영 씨의 서평 "서교동과 성수동? 이젠 여기가 빠르게 뜨고 있다"를 보고 시작된 잠깐의 생각 정리. 이 서평은 '골목길 경제학자'라 불리는 모종린 연세대 교수의 책 <머물고 싶은 동네가 뜬다>에 관한 것이다. 

기사의 한 대목인 "밀레니얼 세대는 오래전부터 도시 안에 있는 한 지역에서 현지 문화를 즐기고 현지인처럼 사는 여행을 선호했다."를 보고는... 이건 내 얘기인데...? 인구학적으로는 X세대에 속하지만, X세대에 소속감을 못 느끼던 내가... 오히려 M세대식 사고방식을 먼저 실현하고 있었구만...이라는 촌평을 트위터에 적다가... 다음과 같은 타래로 이어가게 되었다. 완전히 새로운 생각들은 아니고, 이동성 경험이나 공간 경험의 자산화(Simmel에 대한 프랑스 사회학자 스테판--누구더라...? 다시 찾아두자--의 독해에서 얻은 개념)과 관련해서 "머물고 싶은 동네 현상"에 대한 내 관점에 대한 정리다. 

개인적으론, 이런저런 사회-문화적인 이유로 몸 담은 집단에 소속감을 못 느끼는 습성을 부모님께 물려받아, "여기보다 어딘가에" 내 집이 있을 듯한 느낌을 갖기 때문이다. 전문용어로는 "고향 상실"이라는 현대 문명의 특성 때문에, "마음속의 고향"을 찾아 헤매는 심성이 일반화된 현상이라 하겠다.
여행을 통해, 남들이 터를 오래 잡고 살아온 남의 고향에 가서 머물면서, 고향(로컬)에 살아보고 싶은 소망을 잠시나마 실현하는 것이다. 그렇게 체험을 하고 돌아와, 내가 사는 곳을 고향스럽게... 즉 나의 개성과 경험이 반영된 로컬로 만드는 사람들이 나타난다.
그에 이어서, 장거리-장기간 해외 체류를 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해외 일년살기를 다녀온 사람들이 만들어낸 로컬에 한달살기, 혹은 방문하는 사람들이 늘어난다. 간략히 말해, "남의 고향 빌려살기"의 평준화 과정이다. 여기에서 공간 경험의 자산화 과정이라는 경제가 나타나는데...

보들리야르의 시뮬라크르 이론을 자세히 공부한 적은 없지만, 고향 상실-남의 고향에 대한 선망이라는 전도 현상에 대한 나의 관찰은.... 동네살이 경험에 대한 대중적 열광이나 새로운 로컬 경제학에 대한 정치경제학적 기대에 반하는 딴소리인데... 그렇다면, 내가 밝혀야 할 바는... 이러한 사회적 사실과 관련하여 내가 제기하고 싶은 문제는 무엇인가 하는 것이다. 결국 진정성 있는 경험이 아니기에, 이러한 소비적 경험은 가치가 없다...는 계몽주의적 훈계의 유혹에 흔들리지 않는 것은 아니지만... 그것은 나 자신을 젠트리피케이션의 피해자라고 생각했을 때의 1차적 반응이고, 그보다는 더 정확하고 정밀하게,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나 내가 답을 알고 싶은 질문들을 차분하게 생각해 봐야 할 터이다. 진짜 질문을 던지기 위한 예비질문 차원에서 적어둔다. SNS 타임라인에 흘려보내는 것보다는, 시간이 있을 때 다시 들여다 보고 발전시킬 기회를 기다리는 게 낫겠지. 요즘 유행하는 대로, 다음 단계의 분업은 미래의 나에게 맡기겠다. ㅎㅎㅎ 

posted by amiedame
2020. 2. 25. 07:02 삶의 한때/기억의 한때

며칠 전에, 2003~2007년 사이 다니던 출판사에 재취업하는 꿈을 꿨다.

그 회사에서 일도 꼼꼼히 배우고, 신입사원 치고는 일 잘한다고 인정도 받기도 했고, 파주출판도시에서 편집자 선후배들을 만나 즐거운 기억도 많던 곳이라... 뭔가 앞으로도 내 직업적인 상황에서 또 그런 상황이 생기지 않을까, 좋은 기대를 해본다.:-)

그런데, 이 회사는 재직 4년차에 사내 인간관계가 피곤해지고(사실 사내정치에 소질 없는 초민감성 성격;;;), 야근과 스트레스로 인해 건강이 안 좋아져서 그만두었다. 2007년 초에 그만두려고 다른 회사 면접까지 봤다가, 그 다른 회사에서는 오라고 했지만, 몇 가지 조건이 마음에 안 들어서 옮기지 않기로 했다.
아무튼, 그렇게 이직을 잠시 포기한 직후, 당시에 내가 직속상사에게 사적인 대화에서 내가 그런 상황을 넘겼다고 얘기하면서 "지금 제 심정은 의리는 남았지만, 더이상 사랑하지 않는 남자와 결혼식 강행하는 신부 심정이에요."라고 했던가. 지금 관점에서, 이 신파조의 비유를 내 손으로 다시 타이핑해보니, 손가락이 정말 오글거린다... 그때 내가 이별을 잘 다루지 못했구나. ㅎㅎ
그렇게 엉거주춤 주저앉았다가, 바로 그 보름 후에 업무시간에 경미한 교통사고가 났고, 그 후유증으로 허리가 아파서 치료를 위해 휴직했다가 복직하지 않고 결국 사직했다. 여기서 남은 교훈은, 흔한 이야기지만, 인연이 이미 다했는데, 억지로 붙들면, 그런 일이 생기는 것이다... 지금은 그 회사 운영진에 대해 좋은 기억만 간직하고 있지만, 어쨌든 그때는 헤어질 때가 되었는데, 앞날에 대한 두려움에 주저앉으려 했더니, 사고가 나서 건강이 상해, 그 이후로 몇 년을 고생했다. 인연의 맺고끊음이 그래서 중요하다. 
(퇴사 한 달 후, 결국 연초에 면접을 본 회사에서 강력히 오라고 하고, 나는 약화된 건강으로 인해, 정신력도 약해져서, 거절을 제대로 못하고 재취업을 했는데, 정말 나와 맞지 앉는 회사 분위기를 억지로 참으면서 버티다가 더 큰 정신적 위기를 겪었고, 그 트라우마를 극복하는 데, 무척 오랜 시간이 걸렸다. 하지막 그 정신적 위기 덕분에 내가 프랑스까지 오게 되었으니, 모든 것이 나쁘게만 된 것은 아니다.)

아무튼 나중에, 내 상황이 좀 편안할 때, 2003~2007년에 다녔던 H출판 분들께, 그 시절에 얻은 많은 배움에 대해 감사하다고 한번 인사를 드리고 싶다.

posted by amiedame
2020. 1. 7. 04:06 삶의 한때

으아, 새해를 맞이하여, 1월 1일에(아니 12월 31일이던가?) 25분 글 쓰고 5분 쉬고, 두 시간마다 25분 쉬라고 말해 주는 시간관리 어플을 깔았다.

하루에 총 12세션을 쓰니까 글 쓰는 데만 6시간 쓰는 셈이고, 쓰기 외에 읽기나 다른 작업은 아침 워밍업이나 저녁 쿨 다운으로 최대 하루 2시간 추가로 하면 되겠다.
여러 가지 설정 실험을 해본 결과, 원래 설정대로 25분 작업, 5분 휴식이 적정치가 맞다. 짧게 5분 쉬는 사이에 스쿼트나 스트레칭을 한다. 며칠 써보니까 조금씩 익숙해지고, 글 쓰는 효율도 올라가기 시작했다.


오전 세션이 끝나면 미리 만들어둔 점심 데워 먹고 (집에서 도시락 먹는 여자^^/) 잠깐 산책+햇볕 쬐기+간식 구매하러 나갔다 온다. 그리고 집에 와서 차를 마시고, 힘들면 30분 파워 낮잠 영상 도움 얻어 쉰다. 그리고 다시 오후 세션 시작... 평생 이런 자체감시 시스템 처음으로 도입해 본다...
아, 하기는 학교랑 비슷한 시스템이라고도 할 텐데, 가만히 앉아서 남의 말 50분 듣는 것보다야 글쓰기가 요구하는 집중력이 더 크다. 게다가 나는 치타의 달리기 같은 초단기 초집중력의 소유자이다. 25분 짧고 굵게 작업 후 쉴 필요가 있다.
저녁엔 요리, 합창단, 운동, 온라인 쇼핑, 유투브 시청, 간혹 하메와 수다나 더 드물게 공연 관람 등으로 또 바쁘다. 일요일은 수영, 자전거, 산책, 낮잠, 요리, 성당, 교외 외출 등으로 채울 예정이다. 평생 이리 살지는 모르겠지만, 올 한 해는 이렇게 살아도 괜찮을 것 같으다. 논문을 완성한다는 목표로 말이다.

옛날에 조지 기싱이라는 사람이 <헨리 라이크로프트 수상록>에 쓴 생활방식을 부러워했는데, 가사 도우미는 없지만, 뭐 조금은 비슷한 듯. 다행히도 살림엔 재능도 있고 재미도 있어서 돈은 굳었다. 생각지도 않게 꿈을 이뤘네...라고 생각하고 행복해하겠다. (그나저나 오늘은 반드시 마감을 해서 더 큰 행복을 얻어야지.)

posted by amiedame

어제 2017년 가을에 유럽 한국학 대학원생 대회에서 영어로 발표한 글을 처음으로 다시 읽어보다가 한국 학회지에 투고해야겠다는 마음이 처음으로 들었다. 발표문 자체는 퇴고를 많이 안 한 학술 글쓰기로서 형식적인 전문성은 조금 부족하지만, 읽다 보니 문제의식이나 논의전개 면에서 재밌게 읽고 있다.

읽다가 DBpia의 한국 연구들 찾아보니, 아직까지 이 대상(연구는 많이 되었지만)에 대해 이런 관점에서 구체적인 경험 연구는 아직도 나온 바가 없다. 이런 시각에서 질문한 사람이 아직까지 나밖에 없나 보다. (하기는 내가 정확히 무슨 연구하는지 아는 사람이 아직 나밖에 없으니...)

이 글에서 논한 요소들은 심화해서 박사논문 질적 분석 파트에서 더 논하겠지만, 더 묵히지 말고, 한국 저널에 발표하는 방법도 생각해 본다.

그간 박사논문이 막혔다 싶을 때, 저널 출판으로 착실히 비판과 수정에 대한 맷집을 키웠으면 좋았을 텐데... 지나간 일은 좀 아쉽지만, 어쩌겠나, 지나간 일은 지나간 대로 의미가 있다고 생각하고(feat. 전인권 선생, <걱정말아요 그대>), 한국 저널 출판 과정에서 받을 반응과 수정하면서 발전시킬 아이디어들을 통해서, 오히려 박사논문 디펜스하는 데 유리한 답변을 미리 얻겠다는 기대감도 조금 생긴다... (리옹의 지도교수에겐 2016년에 발표하러 가기 전에 보여드리고 의견을 받았는데, 도시사회학의 전문성 안에서 직업적인 글쓰기로서 보완할 부분에 대한 커멘트를 받았고, 그 부분은 이 글을 논문으로 다시 쓸 때에 보완할 예정이다.) 
 
오늘 당장 할 건 아니고, 내년 3-4월에 한국어로 번역해서 20장 분량으로 투고용 초고를 쓴다고 계획하고, 연말이나 연초에 믿을 만한 분에게 이 거친 초고(와 함께 내가 확장하려는 방향을 추가하거나, 생각으로 정리해서)를 보내서 글로벌한 의견을 구해 봐야겠다.

posted by amiedame
2019. 10. 9. 07:27 삶의 한때

어제 명상을 하면서 어렵게 기억해 냈는데, "기억"이란 단어를 논문 계획에서 배제한 다음부터 논문 쓰기가 막혔던 것 같다.

그래서 "기억과 사회화"라고 검색해 보니, 퀘백의 몽레알(몬트레올)의 사회학자가 알박스의 기억사회학에서 사회화 과정의 문제에 초점을 맞추어 쓴 논문을 딱 찾았다. 1997년에 나온 글인데, 지도교수도 모르는 문헌인 듯싶다.
이론적인 논의가 복잡한 글이라, 한번에 이해하기에도 어렵고, 앞으로 어떻게 써먹겠다는 생각이 바로 떠오르지는 않지만, 인터뷰이들이 과거와 현재를 분석하는 데 적지 않은 도움이 되겠다.
'기억' 하나 추가하자고 그간 계속 다듬어온 논문계획을 다 뒤틀을 생각도 없다. 문헌 하나 찾거나 개념 하나 배울 때마다 논문 계획 조금만 바꾸는 것 같아도, 딴 데로 간다고 지도교수한테 혼난다;;; 기억이라는 말을 너무 전면에 내세우지 않고, 중간중간 써 먹는 방법을 고민해서 글을 써야지... (논문 2부나 3부에서 쓸 때 고민하면 된다.)

그나저나, 체계적으로 글 못 써서 박사논문 통과 못한 벤야민의 몽환적인 에너지는 논문 다 쓸 때까지 받지 말아야지 하고, (번역된 문체를 별로 좋아하지 않은) 한국어판 벤야민 선집, 어디다가 치워두나... 하고 생각하면서, 또 책장의 벤야민 코너에서 <Actuality of Walter Benjamin>이라는 책을 집어 들어 그냥 아무 데나 펼쳤다. 그런데 나온 페이지가 또 기억 이론에 관한 챕터이다. 역시 기억에 대해 쓰라는 하늘의 계시인 것이다...

과거 부분에 집중하지 말고, 지금의 주거 선택이나 이웃관계에만 집중하라는 지도교수의 코멘트를 받은 게 이삼 년 전인데, 그리고 나서 좀 답답해졌던 것 같다... 그때 잘 생각해서 해명을 했어야 하는데, 그럴 만한 에너지가 없었다. 뭐 아무튼, 계시를 받았으니, 앞으로 잘 써질 것이다... 믿고 자러 가겠다.

posted by amiedame
2019. 9. 26. 06:51 삶의 한때

2010년 말에 한국의 마지막 직장을 그만둘 때, 퇴사 기념 선물로 받은 프린터를 오늘 컴퓨터용품 되살림가게에 기부했다.

 

제품보호 스티커도 안 떼고, 워낙 깨끗하게 써서, 아직도 산 지 1년도 안 된 제품 같은데... 퇴사 한 달 만에 퇴사선물로 받은 프린터를 데리고 프랑스에 온 지가 어느새 8년하고도 8개월이다.
한국시장 전용 출시품이라, 프랑스에서는 카트리지를 구할 수가 없었다. 필드웤 때문에 매년 한국에 들어갈 때마다 카트리지를 여러 세트 사와서 쓰다가, 박사과정 2년차쯤, 논문 끝난 한국 사람에게서 30유로에 흑백 레이저를 인도받았다.
5년차에 연구소 근처로 이사해서, 연구실 프린터를 편히 쓰게 되면서, 레이저 프린터는 다른 박사과정 친구에게 논문 잘 쓰라고 넘겨주고, 집에 남긴 데스크젯 프린터였다.

연구소의 공용 연구실보다 다 집에서 혼자 작업하는 습관을 되찾으면서, 연구실에는 인쇄/복사할 때만 간다. 시간 아낄 겸, 이제는 프랑스에서 구하기 쉬워진 정품 카트리지나, 중국에서 만년잉크를 주문해서 그 데스크제을 다시 쓸까 몇 달 고민했는데, 결국 어느 쪽으로도 실행은 하지 않았다.
어쩌면, 4년 이상 안 쓴 이 물건과 나는 이미 인연이 끝난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어서, 오늘 오후 끝물에 벌떡 일어나서 전부터 봐둔 되살림 가게에 데려다 주고 왔다. 그동안 고마웠어. 좋은 새주인 만나.

앞으로 어쩔지 아직 모르겠다. 연구소는 여전히 걸어서 10분거리, 역시 10분거리인 학교 도서관 복합기도 강사 계정으로 돈 안 내고 이용할 수 있고, 소량으로 급한 출력 필요하면 옆방 콜록이 부탁하라고 했고, 논문 진도가 빨라지기 시작해서, 쓰는 대로 인쇄해서 퇴고할 필요가 잦아지면, 와이파이로 연결되는 (좀더 신형의) 중고 복합기를 하나 살까 싶기도 하다.

일단은 프린터가 있던 책장 칸에, 논문 끝날 때까지는 잘 안 볼 예정인 교양서나 철학책들을 꽂았다. 그 덕분에 책장에 자리가 나서, 불안정하게 꽂혀 있던 클리어 파일폴더(주제별로 인쇄된 저널 논문들)과 필드웤 노트들을 좀더 꺼내보기 편하게 정리했다.

하여간, 더 이상 그 깜장 프린터에 대해 생각하지 않아도 된다. "퇴사 선물로 받은 프린터"를 떠나 보내면서, 그 직장에서 겪은 부정적인 감정들도 더 확실하게 떠나보냈다고 믿어 본다.

posted by amiedam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