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주에 춥다가 이번 주에 밤 기온이 3~4도 올라간 걸 모르고, 지난 주와 비슷하게 따스하게 난방을 하고, 이불을 두 장 곂쳐 두툼하게 덮었다. 이번 주에 며칠간, 밤에 자다가 몸이 체온을 낮추려 땀을 흠뻑 내고, 방광이 가득 차도록 오줌을 만들어 열기를 내보냈는데... 나는 며칠간, 두 시간에 한 번씩 자다깨다 화장실만 가면서도 난방 생각을 못했다. 생리전이라 몸이 안 좋은가 그랬다. 그제는 침대 시트 아래 깔아둔 합성솜 패드가 더워서 그런가, 통기가 잘 되는 얇은 오리털 이불로 바꿔보기도 했지만, 현상은 계속 되었다. 오늘 새벽에야 난방이 더운가, 생각이 나서 난방을 낮추고 두어 시간 더 잤는데, 그때는 땀이 안 났다. 아침에 조금 더 자기는 했지만, 며칠간 잠을 쪼개서 자며 깊은 잠을 못 잤더니, 마그네슘 먹었는데도 눈꺼풀이 떨린다. 컨디션이 오늘 같은 날 자잘한 사고 치기 쉬우니, 만사에 조심하자. 아무튼, 지금이라도 숙면을 방해한 원인을 알아내서 다행이다. 파리는 앞으로 며칠 습하고 덜 추운 날씨가 예보되어 있다.
'삶의 한때'에 해당되는 글 51건
- 2025.01.24 며칠째 땀 내며 자다깨다 한 원인을 밝히다.
- 2025.01.16 마침내, 홀로 있음 속에서 성장을 찾습니다.
- 2025.01.14 2025년 1월 13일의 어떤 순간들.1
- 2025.01.05 커피 대신 마시는 것들
- 2025.01.04 초록 자전거를 잃어버리다.
- 2024.12.27 사라졌던 통증이 돌아왔지만...
- 2024.12.24 정치인과 여배우6
- 2024.11.27 <受祿于天>(수록우천, 하늘에서 녹을 받다)7
오후에 갑자기 집주인 분(70대 한국 남자분)이 집 우체통 주변의 덩굴들을 가지치지한다고 셋집에 오셨다. 대문 열어들이는 김에 인삿말을 전했더니... 고향 얘기며, 젊은 시절 얘기며 한참 하시다가(지난 1년 반 동안 이미 3번 넘게 자세히 들은 이야기) 갑자기 나한테 계속 혼자 살면 힘들다고 결혼 좀 하라고 권유를 하셨다. 얼마 전에도 집에 리노베이션 공사를 책임 지신 건축가(나와 나이가 같은 한국인 남성. 기혼인지, 미혼인지는 모름) 분을 나에게 약간 들이미시는 느낌을 받아서 약간 불쾌했는데... 이번에 또 그런 얘기를 하신다.
그냥 한국 어르신들 오지랖이 그렇지 뭐, 하고 한귀로 듣고 한귀로 흘릴까 하다가, 내가 사실 그렇게 흘려보내는 걸 잘 못하기 때문에... 재발 방지 차원에서 일부러 단호하게 대답을 했다. 오히려 지금은 결혼, 출산 적령기 다 지나고, 중년에 마음 편하게 홀로 있어서 너무 좋~다고 다소 강한 어조로 대답했다. 중년이면 결혼했던 사람들도 이혼해서 홀가분해지는 연령대인데, 굳이 뭐 하려 둘이 되는 길을 찾겠느냐고. 집주인 아저씨가 본인 세대도 아니고, 젊어서 남편을 읽고 90대까지 혼자 사신 장모님 이야기, 즉 60-70년 전 세상 이야기를 하면서, 여자가 혼자 사는 게 쉬운 일이 아니라고 나를 설득하러 하셨다. 내가 다시 대답했다. 혼자여서 힘든 점도 없지는 않지만, 또 혼자라서 못할 것 같았던 일들을 용기 내서 하나씩 하나씩 해내는 즐거움과 보람이 얼마나 큰데요, 하고 대답했다.
코로나 시기에 불편한 사람들과 억지로 시간을 많이 보낼 시절이 있었다.그때는 가족 없이 이역만리에서 혼자 사는 외로움 이 힘들다고 생각했지만, 실은 사회적으로 고립되면 안 된다는 집단적 신념에 맞추어서 나하고 결이 맞지 않는 사람들과 시간을 보내다 보니, 그것이 오히려 더 외로웠던 것이다. 예전에는 나이도 어렸고, 결혼-임신-출산-육아 등 생애주기 적령에 대한 부담도 느끼고, 또 직장생활-대학원 생활을 통해서 사회생활을 배우면서 인격 형성을 위해서도 여러 가지 경험을 해야 했던 시간이 나빴던 건 아니다. 좋았던 날도 있고, 힘들었던 날도 있다. 하지만, 지금은 혼자서도 시간을 잘 보낸다. 나는 내가 하는 일에 집중할 수 있고, 살림과 요리도 좋아하고, 책이나 인터넷 통해서 내가 관심 있는 주제들을 배우는 등... 균형이 잘 잡힌 상태에서는 실은 잘 지낸다. 사교성 있는 내향형인 내가 외향형인 줄 알고, 사회생활에 에너지를 쏟은 게 오히려 나를 지치게 했던 것을 체력이 떨어지는 중년이 되어서 마침내 깨달은 것이다.
결혼에 관해서 말하자면, 우연이든, 필연이든 어떻게든 나하고 맞는 사람 만나면 짝을 못 이룰 것도 없다. 나는 자발적 비혼주의자는 아니다. 그러나 그 일이 내 인생에 일어날 일이면 내가 노력 안 해도 일어날 일이다. 무엇보다 다만 혼자인 게 힘들다는 이유로 누군가와 삶을 공유하려고 했다간, 나의 외로움을 채우기 위해 상대에 대한 기대만 높아져서, 더 외롭고 서러워질 수 있다. 내가 홀로 충만할 때, 누군가와 삶을 나눌 여유도 있는 바. 특히 출산, 육아의 주제에서 해방된 나이인 중년의 결혼이라면 더더욱 그런 이상을 품을 만하다. 더욱이 결혼은 지금 이 순간 나에게 가장 중요한 주제가 아니다. 그것에 매여 있지 않다. 그보다는 경제적 자립과 내가 하는 일에 대한 열정과 집중력, 작은 성과들을 다시 쌓아가는 일이 더 중요하다.
아무튼, 한국을 떠난 지 30년이 넘어, 예전 한국 사회의 가치관에 머물러 있는 친절한 가부장 분이... 나를 좋은 마음으로 걱정해 주신 건 알겠는데... 나도 내 멋에 사는 사람이고, 투쟁적이지는 않지만 확신을 가진 페미니스트인지라, 실은 남이 내 인생에 대해 왈가왈부하는 게 대단히 불쾌하다. 부인 되시는 분에게, 남편 분 오지랍 좀 말리시라고 살짝 컴플레인을 할까 하다가, 그냥 글자 몇 줄로 털고 간다. 에잇, 짜증나... 어제 이 글을 쓰고도, 나쁜 기억을 씻겨버리는 호오포노포노 명상을 1시간이나 했다. 그런데 오늘도 어제보다는 강도가 훨씬 덜하지만 또 기억이 올라와 기분이 나쁘다. 저녁에 또 호오포노포노 명상을 해야겠다.
늦은 아침 먹고, 설거지를 하고, 침대 시트를 갈고, 침구 세탁을 돌리고, 마당을 쓸고, 집안에 청소기를 돌렸다.
보통은 일요일에 하는 일인데, 토요일 밤에 뜻밖의 상황으로, 큰 모임에 갔다가 지인 집에서 외박을 했다. 어제 오후 일찍 돌아왔지만, "낯선 사람 많은 모임+뜻밖의 외박+지인 부부와 수다" 3단 콤보의 후유증으로, 저녁에 가볍게 호박죽(귀리와 단호박을 전기밥솥 죽 메뉴로 익힘)만 끓여 먹고, 집에서 가만히 쉬었다. 나이가 들수록 점점 더 내향형 인간이 되어간다.
여엉 눈에 거슬리던, 몇 년째 장롱에 끈적하게 붙어 있었을 포장 테이프를 떼어내고(feat. 드라이기, 지우개), 장롱 뒤 거미줄과 거미 사체와 먼지들도 거둬냈다. 아이고, 이사 가는 셋집마다 내가 구석구석 묵은 때를 벗겨주고 다니네. 귀찮지만 내 건강을 위해 어쩔 수 없다. 나를 사랑하는 방법이고, 또 다음에 살 세입자에게 보시한다 생각하며, 굳이 의미를 부여해 본다. 청소할 때 몇 년간 쌓인 먼지를 보면 한숨이 나오지만, 다 치우고 나니 개운하다.
오랜만에 렌틸콩을 넣고, 야채수프를 끓였다. 커리가루가 없어서 못 넣고, 오레가노만 넣었더니 맛이 조금 심심했다. 깊은 맛을 내고자 한국에서 유행하는 대로 버터를 추가했다. 맛은 확실히 고소해졌는데 속은 조금 더부룩하다. 역시 내 위장은 프랑스 버터보다는 올리브유 위주인 지중해식 식사를 좋아하나 보다. 렌틸콩이 없으면, 버터를 넣어도 괜찮겠지만, 렌틸콩만으로도 포만감은 충분하니까... 다음에는 커리가루랑 버섯으로 깊은 맛을 내는 게 좋겠다. 유행하는 음식 따라하기보다, 내 몸의 이야기를 잘 듣는 게 제일 중요하다. 건강한 중년이란 그런 것이다.
오늘의 특별한 행복. 2주 전에 줄기를 잘라 물꽂이를 한 점박이 식물이 드디어 순을 내놓기 시작했다. 뿌리 부분과 잎 부분만 남기고 줄기를 반으로 잘라서, 윗 부분은 물에 담그고, 아랫부분은 화분에 남겨 두고 매일 들여다 보았다. 혹시 뿌리와 새 잎사귀가 나지 않고 죽어버리면 어떨까 걱정도 하고, 너무 들여다 보면 마음이 초조해질까 싶어 일부러 안 보이는 곳으로 자리를 옮겨보기도 했다. 드디어 보름 만에... 뿌리 없이 잎사귀와 줄기만 물에 담근 쪽에 새 뿌리가 될 순이 나오고, 잎사귀가 없이 줄기와 뿌리만 남긴 화분에서는 새 잎사귀가 될 순이 나오기 시작했다. 휴, 다행이다. 반갑고 또 기쁘다. 물 너무 많이 주지 말고, 잘 자라라고 매일 눈 맞추며 축복만 해줄 거다. :-)
블루스카이 타임라인에 적었던 오늘의 생활기록들을 블로그로 모아서 옮기고 나니, 꺽꽂이한 점박이 식물이 드디어 새순을 내준 것처럼, 과거로부터 잘라내 현재에 뿌리를 내리고, 또 미래로 향하는 새 잎사귀를 내려는 내 마음에도 조금 더 용기가 난다. 그렇게 새순 소식에 기뻐하다 보니, 계속 기다려도 들려오지 않는 윤석열 체포 소식도 결국엔 듣게 될 거고, 한국 사회의 회복과 민주주의 발전도 이루어지리란 희망마저 올라온다. 고맙다, 사랑하는 반려식물 점박아~ 우리 인내심 갖고 튼튼하게 같이 잘 성장하자. :-)
커피를 거의 끊다시피 했다. 거의 끊다시피 했다는 말은, 내게 커피를 완전히 금지하지는 않지만, 그보다 더 몸, 정확히 말하면 위와 장에 좋은 음료를 마시기로 선택했다는 말이다. 작년까지만 해도 커피를 끊지는 못해서, 하루 한 잔, 주로 오전에 뜨거운 물에 연하게 탄 인스턴트 블랙커피에 우유를 넉넉히 부어, 따끈한 밀크티처럼 마시곤 했다. 12월부터는 그나마도 중단하고(간헐적으로 마실 순 있지만), 커피를 대신하는 3가지 가루를 활용해서 음료를 만든다. 그 세 가지는 다음과 같다. 치커리뿌리차, 무가당 핫초코, 그리고 말차 꿀 두유다.
프랑스에서는 쉽게 구할 수 있는 치커리뿌리 차는 인스턴트 제품이다. 예전에 나폴레옹 시절에, 영국이 대륙봉쇄령으로 프랑스에 커피 원두 공급을 끊었을 때, 프랑스인들이 커피 대신 마시던 차라고 한다. 뜨거운 물에 인스턴트 커피처럼 타서, 우유를 섞어 마신다. 섬유질이 풍부해서 장에 좋고, 간의 열도 내려준다. 비슷한 효능의 차로... 한국에 가서는, 더 구하기 쉬운 한국산 보리차를 마신다.
무가당 핫초코는, 설탕이나 탈지분유(혹은 팜유) 없이 100% 순카카오 가루로 만든다. 바닷소금 한 꼬집, 중국식 오향가루를 살짝 넣어 감칠맛을 낸다. 따근한 물에 카카오 가루와 소금, 오향가루, 그리고 단맛을 원할 땐 꿀이나 조청을 섞은 후, 우유나 두유를 더해 데운다(전자렌지 약 모드에 돌리거나, 밀크팬에 담아 불 위에서 직접 데운다.)
말차 꿀 두유도 핫초코 만들기와 같은 방식이다. 한국에서 사온 가루녹차, 소금, 꿀 조금을 따뜻한 물에 갠 후, 무가당 두유를 더해서 데운다. 꿀이나 조청 같은 단맛을 넣지 않으면, 또 쌉쌀하고 고소한 맛이 괜찮다.
2025년 들어, 다시 일기를 쓰기로 하면서... 특별한 생각들을 적는 것보단, 이 블로그의 원래 슬로건이 그렇듯, "천천히 살기를 권함"에 가까운 내용으로서, 내 일상의 느린 순간들을 기록하는 것도 좋겠다 싶어서 기록으로 남긴다. 빠르고 조급한 마음을 부추기는 커피 대신, 느리고 기초에 충실한 삶을 회복하고자 하는 노력의 일환이다.
아침 꿈에서 오랜만에 내가 좋아하는 초록 자전거를 탔는데, 타다 보니 뭐가 이상했고, 다시 보니 바퀴에 바람이 다 빠졌다. 자전거 바퀴에 바람 넣으려고, 공공 자전거 펌프를 찾으러 갔다. 자전거 펌프를 찼다가, 못 찾아서 근처의 오래된 상가에 갔다. 조명도 컴컴한 그곳은 상당히 복잡했다. 안에서 헤매다가 간식을 사먹고, 그러다가 상가 내부 어딘가에 자전거를 흘렸다. 다시 돌아가니 누가 끌고갔는지 자전거가 없다. 계속 찾아 헤매다 깼다.
꿈에서 깬 후에도 계속 심란하다. 꿈속의 바람 빠진 자전거는 어쩌면... 갑작스런 연말연시의 이사로... 계속 쓰기가 미뤄져서 텐션이 빠져버린 내 글이고, 복잡하고 깜깜한 상가는 계엄령 이후의 한국 사회고, 간식에 한눈 팔다가 자전거 잃어버리는 사태는 지금 내가 느끼는 위기감이겠지? 여기서 간식은 아마, 경제적 문제는 어떻게 해결할 것이냐는... 주변 사람들의 재촉 때문에 불안하고 흔들리는 내 마음일 것이다... 제발 본언에 집중하자, 집중. 하...
9월 초부터 12월 초까지, 100여 일간 한국에서 가을을 난 후, 12월 17일에 파리 집으로 돌아왔다. 6개월째 계속되는 공사 마무리 단계의 어수선함과 전력 승압공사가 잘못 되어, 하루에도 20번씩 두꺼비집이 내려가면서 날은 추은데 난방도 제한적이고, 요리를 하기도 힘들어 식사도 부실하고... 여러 가지 불편을 겪고 있다. 프랑스 생활에서 처음 겪는 일은 아니라, "이 또한 지나가리라~" 하면서 그냥 넘기기도 하지만, 일주일 넘게 추운 데 불편이 계속되니, 몸은 힘들다.
그 와중에 집주인은 새로운 공사를 시작한다며, 큰 길 건너 본인 소유의 다른 집으로 이사를 하라고 했다. 전혀 계획에 없던 일이고, 이사를 하는 게 나한테는 보통 일이 아니라 처음엔 반발했다가, 앞으로의 공사 때문에 소음에 시달려서 노이로제에 걸릴 일이 걱정이 되어.... 결국 이사를 하기로 했다. 파리에 돌아와 며칠 시차적응만 하면, 11월에 구상한 글을 쓰려고 했는데... 갑자기 이삿짐을 쌀 형편이다. 몇 년째 도돌이표처럼, 계획을 세우고, 몸이 아프고, 슬럼프에 빠져 일에 덤벼 들지 못하고, 자신감이 떨어지고... 이런 반복을 겪는 게 이제 지겹다. '별 일 아니다, 이 정도는 넘길 수 있다' 생각해 보지만, 몸은 스트레스를 받아, 4년 전에 찢어진 등 근육의 통증이 돌아왔다. 아침에 일어나서는, 등은 아프고, 이삿집 쌀 일은 막막하고... 사는 게 좀 서러웠다.
2020년 2월에 처음 다쳤을 때만큼 찢어지는 고통은 아니지만, 2022년에 한 달 넘게 침도 맞고, 매일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몸을 풀고, 특히 등근육 풀기 운동을 열심히 해서... 다 나은 줄로만 알았다. 그런데 그제, 이사 문제로 너무 긴장을 해서, 운동을 하는 데 집중을 할 수가 없었다. 등근육이 제대로 풀리지 않은 채 생활하다 보니, 저녁에 예전에 근육이 찢어진 자리가 다시 아프다. 근막 통증이다. 운동을 하고, 찜질을 하고, 근육 젤을 바른다. 다시 심해지지 않길, 조금씩 다시 나아지겠지, 믿어 본다.
사실 상황이 나쁘지만은 않다. 이사 갈 집은 지금 머무는 곳보다 작지만, 그만큼 월세가 저렴하다. 집의 문제로 이사를 하게 된 거라, 옮기는 집의 월세를 특별히 깎아 주셨다. 더구나, 봄에 몇 달씩 한국으로 돌아가 있는 동안 월세를 받지 않고, 내 짐을 보관해 주시겠다는 파격적인 제안까지 해주셨다. 갑작스레 이삿짐을 싸려니, 속이 좀 시끄럽기는 하지만... 한국의 불안정한 정치 상황 때문에, 환율이 오르는 힘든 시절에... 월세가 싼 집으로 옮기고, 또 월세를 내지 않고 한국에 몇 달 다녀올 수 있는 것은 경제적으로는 큰 도움이 되는 일이다. 몸의 통증이 돌아오니 쉽지는 않지만, 좋은 쪽을 열심히 보려고 노력을 한다. 그래도 사실 내 본심을 있는 그대로 인정하자면, 이사를 하고 싶진 않다. 짐을 싸는 것도 큰일이고, 짐을 풀고 새 집을 정리하고... 그러다 보면, 내가 지금 쓰고 싶은 글을 또 잊어버릴고 산만해질 게 걱정이 된다. 나한테 이상적인 상황은, 집주인 분들이 2달 정도 새로 시작할 공사 계획을 꼼꼼하게 세우시고, 나는 그 사이에 글을 쓰고, 지금 사는 집에서 내가 사는 방만 월세를 받으시고... 내가 한국으로 떠날 때 내 짐을 몇 달 맡아주시고, 내가 떠난 집을 월세를 올려받아 새로 세를 내놓으시고... 등등으로 서로 무리하지 않고, 서로 윈-윈하는 상황이다. 그리고 한국에서 숙원사업인 2급 한국어 강사 교육을 받고, 온라인으로 한국어 과외를 하거나, 한국에서 돈을 좀더 벌고 해서... 여름이나 가을에 돌아와, 수영장과 공원이 있는 이 동네에 내 형편에 맞는 좋은 집을 다시 구해서 조용히 글을 쓰고, 내가 할 수 있는 활동들을 이어가면 좋겠다. 소원은 내 마음대로니까, 그리고 이 글은 나만 읽는 일기니까... 내가 원하는 대로 다 써본다.
아무튼... 이번에는 몇 달간 계속된 등의 통증 때문에 지적인 일을 하지 못할 것 같은 좌절잠에 빠져, 코로나 락다운이라는 상황에서 유투브 중독에 걸렸던 그런 폐인 모드로 돌아가지 않을 것이다. 잘 쓰든, 못 쓰든, 내가 생각한 글을 조금씩 쓸 것이다. 누구에게 보이기 위한 글이 아니라, 내가 생각한 그 내용을 내가 글로 쓸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나에게 치유가 되고 힘이 될 거라고 믿어 보면서...
[꿈 기록]
꿈은 전지적 시점에서 진행된다.
30대 후반의 남성 정치인이 있다. 그는 반-여성주의 노선의 대표인물로 유명한 22대 국회의원이다(그는 실존 인물이며, 여러분이 아마 단박에 떠올릴 바로 그 사람이다). 이 꿈속에서 독신인 그는 인맥을 통한 소개팅으로 데이트 상대를 찾는 젊은 남성이다.
이번에 그렇게 그가 만난 여성은 인권운동에도 참여하고, 여성주의에도 관심이 있는 젊은 여배우이다. 정치적인 노선에 따르자면, 두 사람은 만날 일이 없어야 했지만, 어찌 된 일인지 소개팅을 하게 되었다. 두 사람은 나이는 거의 비슷하다. 아마도, 유명세에 비해, 현재의 커리어 면에서 잘나가지 못하는 상황에 있던 그녀가 인생의 무료함 때문에 저지른 일탈이었을 것이다. 두 사람 모두 알려진 인물이었기에, 진지한 연애를 위해서보다는 가벼운 호기심에서 받아들인 소개팅 제안이었다. 반대로, 그 젊은 정치인은 그녀에게 신선함을 느끼며 단박에 반해서, 일탈성 소개팅은 두번째 만남으로 이어졌다. 두 사람은 식당 같은 공공장소에서 두 번쯤 만났고, 서로 어설프지만, 서로를 사귀기 전 단계의 데이트 상대로 인정하고 있었다.
꿈은 이들의 세 번째 만남에서 시작된다. 저녁을 먹은 그들은, 식당 근처에 있는 그의 개인 사무실로 간다. 흥미롭게도, 그 개인 사무실은 정치인의 사무실이 아니라, 럭셔리 운동화가 잔뜩 있는 신발 전시장이다. 이 정치인은 부캐로 한정판 운동화를 수집하고, 점조직을 통해 프라이빗한 판매를 할 때도 있는 수집가였던 것이다. 대중을 통해 알려지지 않은 남자의 면모에 호기심을 느낀 그녀는 긴장이 풀어졌고, 분위기는 조금 더 친밀해졌다.
꿈의 주요 갈등이 되는 사건은 여기서 벌어진다. 세 번째 데이트를 하고, 개인적인 장소에 들어오는 데 그녀가 동의한 것을 포괄적인 동의라고 해석한 남성은 동의되지 않은 데이트 강간을 저지른다. 남자에게 이성적인 호감이 없지는 않았지만, 아직 그 정도까지 친밀한 관계를 나눌 준비가 없던 여성은 심리적으로 큰 상처를 입게 된다. 반대로, 남성은 여성에게 더 큰 애착(집착까진 아님)을 느끼게 된다. 여성은 스스로를 구하기 위해, 성폭력 피해자의 모임에 나간다. 특이하게도, 그녀에게 사랑을 느끼게 된 남자는 상태가 좋지 않은 그녀를 돌보기 위해(?) 그 모임에 따라간다. 그녀가 왜 그런 모임에 그가 따라오도록 내버려두었는지는 알 수 없다. 그를 남자친구라고 생각하지도 않지만, 그를 성폭력 가해자로서 완전히 거부하지도 않는다. 어쩌면, 그녀는 그를 밀어낼 에너지도 없을 만큼, 이미 삶에 지쳐 있었는지도 모른다.
아무튼, 그 모임에서 그는 자신이 상처입힌 그녀가 아니라, 성폭력을 겪은 다른 사람들의 경험을 듣고, 그들이 치유하기 위해 벌이는 여러 예술활동을 통해, 본인이 저지른 잘못의 무게를 실감하고, 스스로를 반성하게 된다. 그리고 그녀에게 용서를 빌고, 더 이상의 접근 없이 다만 그 모임에 드나들게 된다. 공적으로, 그의 반-여성주의 정치적 노선이 바뀌었는지는 알 수 없다. 이 변화는 그저 그와 그녀의 감정적 친밀성의 영역에서만 일어난다.
꿈은 마지막에, 어떤 화해의 장면을 그린다. 파티가 있고, 두 사람은 파티 복장을 한다. 그러다가 무슨 사고가 있어서, 두 사람의 옷이 찢어진다. 그런데, 남자의 복장이 웨딩드레스 같은 하얀색 레이스 셔츠이고, 꿈의 처음에 배가 다소 나왔던 그는 날씬한 토르소의 젊은이가 되었고, 분홍색 레이스 원피스를 입은 그녀는 마침내 그의 어설픈 모습을 보고 친근한 웃음소리를 터트린다.
(끝)
이 꿈이 지금의 시국 상황과 연관이 있는지, 아니면, 요즘 내가 겪어 있는 여러 가지 어려움과 관련된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꿈이 너무 생생하고, 그 감정들이 무거워서, 문자로 옮겨두지 않으면, 해결하고 결정할 일들로 가득한 내 현실로 돌아가기가 어려울 것 같아서, 일어나자마자 컴퓨터를 켜고 기억나는 조각들만 타이핑을 했다.
꿈속에 나온 그녀 또한 상큼하고 단아한 이미지의 실존하는 여배우다. 다만, 나의 의식은 꿈에서 깨자마자 그녀의 이름과 얼굴을 지워버렸다. 아마도, 나의 꿈속에서라도 그녀가 그 남성과 연관되었던 것을 기록으로 남겨서는 안 된다는 검열이 작동한 것이려나?
지금으로부터 49년 전, 할아버지 돌아가시고, 아버지는 유산으로 논 두 마지기를 나눠받으셨다. 그 땅을 (당시 법으로 미성년자라 유산 못 받은) 당신 막내동생이 결혼할 때 증여하셨던 아버지는 은퇴 후에 다시 고향으로 가셔서 본인 이름으로 (빚을 내서) 다시 논을 사셨다. 농부의 아들로 태어난 아버지에게, 땅 없이 시골에 산다는 게 맴이 영 허전하셨던 모양이다(물론 농업인에게 주어지는 각종 혜택을 위한 실용적인 목적도 있다).
엄마 말씀으로는... 새로 산 그 땅은 기업농에게 빌려주셨고, 그 땅에서 나온 소출로 가을에 쌀 네 가마니를 받으신단다. 엄마, 아부지 두 분이 1년에 합쳐봐야 쌀 20kg 드시고, 나와 둘째는 외국 살고, 막내는 집에서 밥을 잘 안 하는 등의 이유로... 그 쌀 네 가마니는 바로 기부하신다니, 집안의 공덕으로 쌓이겠지?
아부지는 40대에 토요일마다 민족문화추친회(현 한국고전번역원)에 가셔서 몇 년에 걸쳐 <논어>, <맹자> 수업을 들으셨다. 그때 강의하신 한학자 선생님께 60대 이후 다시 연락을 드려, 인연을 이어가셨다고. 그분에 우리 집에 한번 오시는 길에, <受祿于天>(수록우천, 하늘에서 녹을 받다)는 중용의 글귀를 서예로 써서 선물해 주셨단다.
실은 그 유~명한 한학자 선생님께서, 그 좋은 글씨를 무려 여섯 편이나 써주셨는데... 남에게 퍼주기 좋아하시는 아버지는 "수록우천" 한 편만 남기고, 또 나머지 글씨들은 달라는 사람들에게 나눠주셨다고 한다(아이고, 아까워라 하는 나는 소인배^^). 아버지에겐 "수록우천"이 제일 나아 보였나 보다. 그게 행복하신 우리 아부지다.
"수록우천" 이야기는 그저께 부모님 댁 갔다가 아부지가 해주신 얘기다. 그 전에 땅과 쌀 이야기는 전부터 알던 집안 사정이다. 기록 삼아 적어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