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마이뉴스에 올라온 윤찬영 씨의 서평 "서교동과 성수동? 이젠 여기가 빠르게 뜨고 있다"를 보고 시작된 잠깐의 생각 정리. 이 서평은 '골목길 경제학자'라 불리는 모종린 연세대 교수의 책 <머물고 싶은 동네가 뜬다>에 관한 것이다. 

기사의 한 대목인 "밀레니얼 세대는 오래전부터 도시 안에 있는 한 지역에서 현지 문화를 즐기고 현지인처럼 사는 여행을 선호했다."를 보고는... 이건 내 얘기인데...? 인구학적으로는 X세대에 속하지만, X세대에 소속감을 못 느끼던 내가... 오히려 M세대식 사고방식을 먼저 실현하고 있었구만...이라는 촌평을 트위터에 적다가... 다음과 같은 타래로 이어가게 되었다. 완전히 새로운 생각들은 아니고, 이동성 경험이나 공간 경험의 자산화(Simmel에 대한 프랑스 사회학자 스테판--누구더라...? 다시 찾아두자--의 독해에서 얻은 개념)과 관련해서 "머물고 싶은 동네 현상"에 대한 내 관점에 대한 정리다. 

개인적으론, 이런저런 사회-문화적인 이유로 몸 담은 집단에 소속감을 못 느끼는 습성을 부모님께 물려받아, "여기보다 어딘가에" 내 집이 있을 듯한 느낌을 갖기 때문이다. 전문용어로는 "고향 상실"이라는 현대 문명의 특성 때문에, "마음속의 고향"을 찾아 헤매는 심성이 일반화된 현상이라 하겠다.
여행을 통해, 남들이 터를 오래 잡고 살아온 남의 고향에 가서 머물면서, 고향(로컬)에 살아보고 싶은 소망을 잠시나마 실현하는 것이다. 그렇게 체험을 하고 돌아와, 내가 사는 곳을 고향스럽게... 즉 나의 개성과 경험이 반영된 로컬로 만드는 사람들이 나타난다.
그에 이어서, 장거리-장기간 해외 체류를 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해외 일년살기를 다녀온 사람들이 만들어낸 로컬에 한달살기, 혹은 방문하는 사람들이 늘어난다. 간략히 말해, "남의 고향 빌려살기"의 평준화 과정이다. 여기에서 공간 경험의 자산화 과정이라는 경제가 나타나는데...

보들리야르의 시뮬라크르 이론을 자세히 공부한 적은 없지만, 고향 상실-남의 고향에 대한 선망이라는 전도 현상에 대한 나의 관찰은.... 동네살이 경험에 대한 대중적 열광이나 새로운 로컬 경제학에 대한 정치경제학적 기대에 반하는 딴소리인데... 그렇다면, 내가 밝혀야 할 바는... 이러한 사회적 사실과 관련하여 내가 제기하고 싶은 문제는 무엇인가 하는 것이다. 결국 진정성 있는 경험이 아니기에, 이러한 소비적 경험은 가치가 없다...는 계몽주의적 훈계의 유혹에 흔들리지 않는 것은 아니지만... 그것은 나 자신을 젠트리피케이션의 피해자라고 생각했을 때의 1차적 반응이고, 그보다는 더 정확하고 정밀하게,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나 내가 답을 알고 싶은 질문들을 차분하게 생각해 봐야 할 터이다. 진짜 질문을 던지기 위한 예비질문 차원에서 적어둔다. SNS 타임라인에 흘려보내는 것보다는, 시간이 있을 때 다시 들여다 보고 발전시킬 기회를 기다리는 게 낫겠지. 요즘 유행하는 대로, 다음 단계의 분업은 미래의 나에게 맡기겠다. ㅎ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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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2017년 가을에 유럽 한국학 대학원생 대회에서 영어로 발표한 글을 처음으로 다시 읽어보다가 한국 학회지에 투고해야겠다는 마음이 처음으로 들었다. 발표문 자체는 퇴고를 많이 안 한 학술 글쓰기로서 형식적인 전문성은 조금 부족하지만, 읽다 보니 문제의식이나 논의전개 면에서 재밌게 읽고 있다.

읽다가 DBpia의 한국 연구들 찾아보니, 아직까지 이 대상(연구는 많이 되었지만)에 대해 이런 관점에서 구체적인 경험 연구는 아직도 나온 바가 없다. 이런 시각에서 질문한 사람이 아직까지 나밖에 없나 보다. (하기는 내가 정확히 무슨 연구하는지 아는 사람이 아직 나밖에 없으니...)

이 글에서 논한 요소들은 심화해서 박사논문 질적 분석 파트에서 더 논하겠지만, 더 묵히지 말고, 한국 저널에 발표하는 방법도 생각해 본다.

그간 박사논문이 막혔다 싶을 때, 저널 출판으로 착실히 비판과 수정에 대한 맷집을 키웠으면 좋았을 텐데... 지나간 일은 좀 아쉽지만, 어쩌겠나, 지나간 일은 지나간 대로 의미가 있다고 생각하고(feat. 전인권 선생, <걱정말아요 그대>), 한국 저널 출판 과정에서 받을 반응과 수정하면서 발전시킬 아이디어들을 통해서, 오히려 박사논문 디펜스하는 데 유리한 답변을 미리 얻겠다는 기대감도 조금 생긴다... (리옹의 지도교수에겐 2016년에 발표하러 가기 전에 보여드리고 의견을 받았는데, 도시사회학의 전문성 안에서 직업적인 글쓰기로서 보완할 부분에 대한 커멘트를 받았고, 그 부분은 이 글을 논문으로 다시 쓸 때에 보완할 예정이다.) 
 
오늘 당장 할 건 아니고, 내년 3-4월에 한국어로 번역해서 20장 분량으로 투고용 초고를 쓴다고 계획하고, 연말이나 연초에 믿을 만한 분에게 이 거친 초고(와 함께 내가 확장하려는 방향을 추가하거나, 생각으로 정리해서)를 보내서 글로벌한 의견을 구해 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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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가을에 리옹에 강연하러 온 하워드 베커에게 질의응담 시간에 "당신이 사회과학을 하는 데 있어서 글쓰기의 역할이 뭔가요?" 하고 물어본 적이 있다.
그리고 즉답을 들었는데... 현장에선 베커가 나에게 "음, 아주 big question이군요"라고 말하는 것만 듣고 좋아하고, 답 자체를 꼼꼼히 듣지는 못했다. (80대 할아버지셔서 목소리가 크질 않으심;;) 강연 동영상을 기다렸는데, 석 달 후에 올라왔고 지금껏 모르다가 오늘 아침에 찾았다.
내가 나를 격려하는 차원에서 내 질문에 대한 대답을 다시 찾아 들었다. 답은 그러니까 "내가 뭔가 아는 것 같지만 쓰다 보니까 알게 되는 거지, 정말 아는 게 아니었어요. 글쓰기는 나에겐 참 신비해요"라고 시작한다. 그러고 보면, 나는 쓰면서 생각하질 않고, 생각을 웬만큼 하고 쓰기 시작해서 시간이 항상 모자라다.
물론 미리 생각했다가 쓰면서 생각을 안 하는 건 아니다. 그 과정은 그 과정대로 있는데, 잘 모르니까 미리 생각을 너무 하다가 정작 글을 시작했을 때는 지쳐서 다른 데로 빠지거나, 중요한 얘기는 이미 혼자 다 생각했으니까, 개념 정의 안 하고 디테일로 건너뛴다거나...
암튼 핵심 아이디어만 있는 상태에서 일단 쓰기 시작하는 마음이 조금 더 필요하려나. 내가 뭘 아는지, 내가 뭘 모르는지 다 쓰면서 하나씩 체크하는 거지... 그럼 정반합 사고 과정이 좀더 드러난 글을 쓸 수 있을까, 증명 없이 결론으로 바로 뛰는 글 말고... 아이고, 글쓰기에 대한 성찰 그만하고 다시 그냥 쓰러 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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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심 먹고 소화시키려고 잠깐 동네 산책하고 동네 카페에서 커피 한 잔 마시고 왔다. 길 건너가 원래 노동자 동네에 대학가가 섞인 동네였는데, 몇 년 사이, 특히 재작년 이후 아이 있는 커플들이 많이 생겨서 (살던 사람들이 애를 낳았는지, 애가 있는 사람들이 이사 왔는지 모르겠으나) 동네에 애들이 많아졌다.

이 동네가 안 비싼 동네일 땐 특히 포르투갈이나 동유럽 혹은 인도, 아시아(베트남, 중국, 한국 등) 쪽 이민자들이 돈 벌어서 처음으로 집 사고 식당하고 그런 동네였는데, 백인 커플들(그 중에도 국제 커플 많다)이 늘면서, 뉴욕풍 혹은 홍대풍 식당카페들도 들어나고, 낡은 이민자 가게들은 문 닫음.

아무튼 길에서 애 안고 다니는 남자들, 아이랑 같이 장 보러 나온 남자들, 유모차 끌고 데이트 나온 부부 등이 늘어났다. 카페에서도 내가 혼자 커피 마시니까 옆자리 커플(젊어 보이는데 애가 셋)의 아이들이 내 테이블 아래서 숨박꼭질. 내가 아이가 귀여워 말 시키니까 아이는 수줍어 도망가고.

사실 프랑스도 주거지랑 상업공간이 많이 구분된 사회라, 주택가나 아파트촌 가면 슈퍼 말곤 상업시설 없다. 배달 피자집이 전부. 부부들이 아이랑 식당이나 카페 잘 안 가고, 애가 네 살이나 넘어야 겨우 식당 진출... 그런데 이 동네처럼 가족 단위 잠깐 외출이 가능한 건 새롭다고 본다(확인 필요).

차랑 자전거, 심지어 버스까지 운행하는 골목인데 아이들이 스카이씽씽 끌고 돌아다니면 안전 문제는 어찌 되나... 뉴욕풍 카페에 노트북 들고 일하러 나온 사람들은 카페에서 애가 갑자기 울면 어떻게 느끼나... 여기서도 노키즈존 얘기가 나올까... 등등 혼자 질문해 보다가... 쓰던 발표문 마무리하러 귀가했는데, 또 이런 글을 쓰고 있네. ㅎㅎ 다 썼으니 발표문 쓰러 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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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 둔 한국인 기혼여성들과 일 관계로 밥을 먹었다. 두 사람은 프랑스 남성과, 한 사람은 중국계 프랑스 남성과 결혼했다. 엄마와 아이의 침실 분리 얘기가 나왔는데, 프랑스에선 보통 백일 지나고 침실 분리하고 애가 올어도 버릇 나빠진다고 잘 들여다 보지 않는다. 원초적 개인주의의 경험이랄까.
나와 같이 밥을 먹은 한국 여성들은 1년 지내고 아이방으로 분리, 4년째 같은 방, 중학교 올라갈 때 분리... 등 제각각 자기 하고 싶은 대로... 했다고 한다. 내 일본 친구는 프랑스식으로 3개월 만에 침실 분리를 했지만, 대신 아이에게 아시아식 감성 모성을 경험하게 하는데, 프랑스 시댁에서 아이에게 집착한다고 비판을 받아서 스트레스를 받았다는 얘기를 내가 하니까, 4살 아이와 아직도 한 방을 쓰는 여성은 자기도 프랑스 시-이모에게 그런 얘기를 들었지만, 눈을 똥그랗게 뜨고 "버릇이 어떻게 나빠진다는 건지 정확하게 얘기를 해보시라"고 했더니, 시-이모가 더 이상 놀라서 말을 못했다고 한다... 
나는 아이가 없으니 당장 직접 상관은 없지만, 한국인들이 개인이 못 되는 이유 중 하나가 모성과의 분리가 지연되는 부분이라 생각하기도 하고, 또 부부간의 친밀도도 중요한데 아이가 가족의 중심이 되면, 남편이 가족에서 소외되는 부분도 있지 않는가, (물론 부부마다 그 부분에 대한 다른 대책을 발견할 수도 있다) 하는 생각이 있어서, 늦어도 만 세 살(어린이집 취학연령)엔 방을 나누는 게 낫지 않을까 하는 개인적인 의견을 평소 갖고 있다. 나 자신으로 말하면, 초등학교 들어가기 직전에 부모님 방에서 아이들 방으로 잠자리를 옮겼다. 그 전엔 집안 사정 때문에 방이 따로 없었고, 좀더 넓은 집으로 옮긴 후에, 동생과 같이 방을 옮겼으니 혼자는 아니었고, 또 초등학교 들어가면서 책상이나 옷장이니 등등 내 나름의 사회적 인격에 걸맞는 개인공간(동생과 공유하긴 하지만, 성인인 부모와는 분리된 공간)을 얻은 셈이다. 
박사논문 때문에 가족의 주거생활에 인터뷰를 하면서, 특히 엄마들이 아이들과 초등학생 후반까지 한 방을 쓰고 남편들이 독방을 쓰거나, 엄마랑 아이들은 바닥에서 자고 남편들은 혼자 침대에서 자는 경우가 많다고 해서... 나는 좀 놀라기도 했다. 내가 어렸을 때, 즉 70년대 후반에서 80년대 초반에 나는 부모님과 같은 방에서 잘 때도, 부모님은 한 이부자리를 썼고,우리는 그 옆에서 따로 잤는데, 2010년대에 한국의 모성은 왜 아이의 욕구를 최우선으로 하게 한 걸까. 민속학 책을 보면 경상도 양반 부부들은 남편은 사랑채에 거하고, 아내는 안채에서 아이들과 생활했는데 그 전통이 현대화 된 것인가, 그렇다면 우리 부모님이 당시에 특이했던 건가, 혹은 70~80년대 미국 문화의 영향이고, 90년대 이후 모성 담론에서 아이와 엄마의 애착이 다시 강조되면서 모-자녀 간의 분리를 최대한 연장하게 된 것인가... 나는 논문에 이런 얘기를 쓸 것인가 말 것인가. (애초에 알아보려던 게 이게 아니라, 인터뷰에서 자세히 물어보진 않았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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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 말에 예정된 발표 준비를 하려고, 학회 주최측에 보낸 발표제안서를 다시 읽었다. 2월에 쓸 때 내 나름으론 잡다한 내용 다루지 않고 연구질문에 초점을 맞춰서 나름 박사논문 소꼭지하나 쓸 분량에 딱 맞춰 썼다고 생각했는데, 다시 읽어보니 역시 훨씬 더 방대한 내용이었다... 이걸 20분짜리 발표에 어떻게 맞추지는 둘째 치고, 이 제안한 내용에 맞는 연구 결과가 써 보면 과연 나올 것인가. 아이고...

발표시간 몇 분인지, 주최측 블로그에 가서 다시 확인해 보니,한 시간 반짜리 세션 하나에 발표 4개. 발표 하나당 주어진 시간은 15분이란다. 나의 더듬더듬 느린 영어를 생각하면, 5장 써서 엄청 열심히 읽어야 할까, 아아, 제안서를 생각하면 5장에 쓸 내용이 아닌데... 음, 그냥 박사논문의 해당 챕터 먼저 쓰고, 발표용 요약문을 따로 써야겠구나. 일의 순서는 과연 그러한데... 과연 내가 그렇게 할 것인가...

일의 순서가 그러하다면, 그냥 그렇게 하자. 일의 순서는 정해놓고, 우발적인 상황에 따라 항상 다르게 처리하면서 스트레스 받지 말자... 일의 속도는 내 마음대로 못해도, 일의 순서는 내 마음대로 할 수 있다. #일단은긍정마인드로

다시 생각해 보니, 발표문은 사전에도 사후에도 보낼 필요가 없다고 하니, 발표문은 따로 쓰지 말고 PPT를 만들어서 발표 연습만 해 가는 게 효율적이겠다. 발표 스트레스 줄여주는 "목 차크라 명상"이나 많이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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