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 4. 22. 20:44 우정의 한때

소아청소년정신과 의사 서천석 샘()의 아동 교육법을 스물일곱 먹은 콜록 티보군 대하는 데 써보고 싶다. 가족이랑 살아도 갈등이 생기는데 타인, 그것도 외국인 청년과 한 집에 살며 친구가 되는 과정이 그리 간단하진 않다. 서로 어색했던 시간도 있고, 또 각자의 마음속에 친해지는 속도가 다르다. 친해져도 그 우정이 발현되는 문화나 개인 성장배경의 차이고 있고. 다만 요새 티보군이 내년에 알테르낭스(일주일의 반은 회사 가고 반은 학교 가면서 월급 받아서 학교를 마치는 것) 자리를 찾느라 요새 신경이 날카로워져서 그 스트레스를 말하는 것과 담배로 피우는데, 난 집에서는 말이 많은 편이 아니라 피곤한 것이다. 그래서 그 상황을 설명하고 조정하고 싶은데, 그때그때 그냥 넘기거나 습관적으로 괜찮다고 말하니까 (실제로 거슬릴 만큼 나를 괴롭히는 게 아니다) 점점 더 신경이 날카로워지는 걸 내가 발견하기 때문이다.  

아이랑 싸우지 말자는 건 아예 말을 말라는 것이 아니다. 대안을 내는 대화를 권하는 것. 의견 대립이 길어지면 아이는 안 들으려 감정적 반응을 보인다. 결국 엄마는 뜻을 못 이루고 아이도 손해. 대안을 내는 대화만이 대립을 줄이고 진전을 이룰 수 있다. "넌 지금 당장 놀았으면 싶구나. 엄마도 그 마음은 이해하지. 엄만 게임부터 하면 공부하기가 싫어지고, 결국 엄마가 또 잔소리를 해서 너 마음을 상하게 할까 걱정이야. 그러면 일단 오늘 한번 시험을 해보자. 오늘 안 되면 내일은 엄마 의견대로 하고." 대안을 내는 대화는 1) 아이 마음을 정리하여 주고, 2) 엄마의 뜻을 정리하고, 3) 대안을 내서 합의하는 대화이다. 중요한 팁! 아이에게도 엄마와 같은 마음이 있다. 엄마의 뜻을 말할 때 그 마음을 부추키자. 이건 사실 아이 마음 속의 싸움이다.

티보군은 육남매의 막내. 같은 집에 산 지 반년쯤 되고 서로 아는 게 많아지니까 막내의 면모가 요즘 많이 보인다. 명랑하고 유머스럽고 엄마나 누나랑 친하다. 허세 없이 자기 속마음도 얘기 잘한다(마음에 드는 여학생과 첫 데이트하고 와서 미주알고주알). 다만 가끔 때를 못 가린다는 게 내게 문제적이다(그 때를 가린다는 것도 절대 객관적인 게 아니다. 내가 평범한 프랑스 콜록은 아닐 테니까...) 
알아듣든 못 알아듣든 열심히 듣는 게 저자들 만날 때 너무 습관이 되서, 관심 없는 티를 잘 못 내는 게 상황을 이리 발전시킨 거라, 티보군 탓만 하고 싶진 않다. 아무튼 요리할 때 말 좀 안 시켰으면 좋겠다. 나에게 요리는 명상이다. 머리 아플 때 수학정석 푸는 사람들이 있듯, 재료들을 분류하고 순서를 부여하고 과정을 이해하고 완성된 결과물을 일정한 시간 내에 창조해 내면서 내 정신을 회복한다. 그런데 나 요리하는 동안 담배 피우려고 부엌에서 숙제하는 티보군이(본인 방 위츳에 사는 이웃이 방에서 흡연 자제 요청) 자꾸 말 시켜서 신경 날카로워진다. 밥 먹을 때랑 차 마실 때 얘기 나누는 건 물론 괜찮지만... 말하는 내용은... 주로 자기가 한 과제물 보여주고, 내가 관심 있는지 없는지 확인 안 하고 자기가 좋아하는 영화나 배우들 얘기하고, 내가 완벽히 못 알아듣기에 집중해서 티비 보는데, 물어보지도 않았는데 드라마 내용 해설해 준다. 동시에 두 가지 하는 게 피곤하다. 외국어의 문제다. 과목한 한국 남자들이 그리워질 정도다. 하하!!
돈 잘 버는 셋째 형이 생루이 섬에 산다는 얘기는 거의 매일 듣는다. 파리 얘기가 나올 때마다 듣는다. (구글 지도로 형이 사는 집 대문 사진까지 보여 줌.) 생 루이 섬이 파리의 명소고, 거기 산다는 건 정말 성공의 상징이긴 하다. 그렇지만 내가 남의 성공에 매일 감탄할 필요는 없지 않나. 그에 비해서 그냥 평범하게 사는 다른 형들 얘기는 자주 안 하고, 성격이 많이 다른 큰형에 대해서는 살짝 흉까지 본다. 역시 맏이인 내 입장에선 들어보면, 큰형의 행동이 전혀 이해가 안 되는 편도 아니더만, 막내인 이 친구는 큰형의 수입에 비해 본인에게 떨어지는 게 제한적이라는 게 얄밉다는 거다. 그러나 결혼했고 아이도 있고 전통적인 가톨릭 가족에서 6남매의 장남으로 자라, 이른바 엘리트 코스가 아니라 전문 직업인(소믈리에)으로 자리잡아 파리에서 자리잡는 게 그 큰형에게 쉬운 일이었을까. 파리 깍쟁이 다 된 게 아주 이해 못할 일은 아니지 싶다. 철부지 티보. 
수다스런 것과 곂쳐져 나를 불편하게 하는 게 설거지 쌓아두는 거랑, 쓰레기 분리 수거 안 하는 거다. (또다른 콜록인 쥐디트 양이 외출이 잦아서 그녀에게 최소한의 가사노동을 분담시킬 틈도 없고, 또 집에 있을 때는 조금씩 알아서 한다. 설거지도 바로바로 하고). 우리집에 초대한 내 친구들과 밥 먹을 때 같이 여러 번 먹었더니만, 내 친구들에게 묻어서 친해지고 싶어한다. 물론 얘는 내 친구, 쟤는 티보 친구 이렇게 편 가를 필요는 없다. 다만 나는 요새 시간이 없는데, 자꾸 친구들과 소풍 가자, 어디 놀러가자 계속 얘기를 꺼내서 내가 부담을 느낀다. 내가 친구들과 만나는 데는 나만의 이유와 리듬이 있다. 가끔은 여럿이 모여서 맛있는 음식 해먹고 좋은 얘기 나누는 것도 좋지만, 보통은 누구와는 한국어로 얘기를 나누고 싶어서, 누구에게는 프랑스 박사과정 생활에 대해 자세히 물어볼 게 있어서, 누구는 프랑스 생활에 대해 내가 조언을 해줄 때도 있어서 등등, 나는 한 사람 한 사람과의 관계에 집중하는 편이다. 그러다 보니, 내 방식으로 우정에 투자하는 시간이 많다. 물론 전보다는 줄이고 있고, 그래서 마음에 끌리는 새 친구를 만나도 전만큼 적극적이긴 힘들다. 아이고 참, 친구가 없어도 고민, 많아도 고민일세. 아무튼 그런데 소풍 가자, 한 건물 사는 한국 친구들 불러서 밥해 먹자 자꾸 그러는 거다. 결국 연락도 내가 돌려, 시장도 나 혼자 봐, 요리도 내가 해... 눈 앞에서 요리하는 데도 도와주냐고 물어보지도 않고, 시키지 않으면 먼저 테이블 세팅도 안 한다. 이런 데 잘 대처 못하는 건 내 성격이 물러서 그렇기도 하지만, 좀 피곤해;; 
아무튼 티보군에 대해 요새 약간의 불만이 쌓이다 보니, 센쓰쟁이 콜록 미쯔군이 그립다. 그 친구는 프랑스식으로 사람 대하면서도 아시아식으로 서로 통하는 데가 있었는데... 미쯔는 거의 최고의 콜록이었기에 (서로 콜록으로서도 생활원칙이 비슷해서 잘 맞았고, 또 각자 인생의 어떤 변곡점을 맞아 성찰적이고 실존적인 얘기를 나눌 사람이 필요해서 친해지기도 했다. 더구나 한국 요리를 무지 좋아하는 친구였고, 나는 나를 회복고저 죽어라 요리를 하던 시절이었고), 다른 사람과 비교해 봐야 소용도 없고, 아무튼 티보군에게 적당한 경보를 발령해야 한다. 상황을 악화하면 안 된다. 말을 하자. 대안을 내자. 글로 얼마간이라도 정리해서 쓰니까 좀 속이 낫네. 다른 사람들에게 말로 할 때는 아무래도 좀 시니컬한 어조가 생겨서 내가 옹졸한 사람 되는 것 같아서, 그것도 좀 부담스러웠는데... 글이 말의 기록이긴 하지만, 말이 하지 못하는 걸 글이 허락해 주기도 한다. 일기형 포스팅, 좀더 자주 해야겠다.


posted by amiedam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