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한혜정 선생님 정년퇴임 기념 한겨레 인터뷰 기사 "엄마처럼 살지 않겠다던 여성들이 '아빠처럼' 된 건 아닌가". 90년대, 2000년대 조한 샘은 영감을 주지만 만나면 어찌나 쿨하신지 나는 좀 많이 어려워했는데, 요새 손자 보시고 넉넉한 할머니 미소를 품은 얼굴을 보여주시니 참 보기 좋다.
사진 : <한겨레> 김정효 기자 hyopd@hani.co.kr
석사과정 3학기에 학점교환제 덕분에 조한 샘의 "질적 방법론"을 수강할 기회가 있었다. 경영학과, 간호학과, 사회학과, 신방과, 문화학 협동과정에서 온 학생들에다가 나처럼 타교에서 들으러 온 학생까지 총 30명이 같이 듣는 대학원 수업이었다. 타교생인지라 수줍음을 타서 그리 활발한 학생은 아니었다. 연대생들은 저런 신기한 주제로도 페이퍼를 쓰는구나, 하고 신기해한 기억이 난다. 여러 가지 시도를 하는 수업내용도 재미있었고, 서로 다른 전공의, 서로 다른 이유로 질적 방법론을 듣는 사람들이 토론식 수업을 하는 것도 나는 처음 경험하는 일이었다.
물론 나 역시 <글 읽기, 삶 읽기>를 대학생 때 세미나 커리로 읽은 그의 독자이기도 하고, 질적 방법론이란 수업이 본래 연구자 자신을 솔직히 드러내면서 연구주제와의 관계들을 설정해 가는 작업이라 수업 자체의 강도도 높았지만, 책이나 수업 커리큘럼을 떠나, 그 와중에 이건 내가 조한에게서 배웠다, 라고 단 하나만 꼽을 만한 대목이 있다.
뭐라고 해야 하나... 음, 그러니까 수업시간에 연구자가 현장에 들어가는 방식에 대한 대목이었든가, 하여간, 조한 왈, 2000년 즈음인가 <우리교육>에서 조한혜정은 신자유주의자라고 비판하는 논평을 게재해서, 스캔들이 되었다. 그런데 당신은 그걸 계기로 문제의 그 글을 쓴 사람이랑 같이 <우리교육> 지면에서 아예 같이 주제토론을 했다. 나를 비판하는 진영이라고 등을 돌릴 필요가 없다고. "나/우리는 원래 이래"라는 규정에 갇히지 않고, 다르면 어떻게 다르고, 또 어떤 지점에서는 같은지, 같이 할 수 있는 지점이 있는지 찾아볼 줄 알아야 한다는 이야기였다.
나 역시 20대 초반을 진영논리 강한 대학의 운동권 사회에서 억압적인 사회화 과정과 그 이후의 황폐화를 거친지라, 이런저런 패퇴감이나 경계심이 많았다. 그런데 그 이야기를 듣는 순간에, 티는 안 냈지만, 망치로 맞은 듯했다. 누구에게 바로 그 기분을 설명하기도 어려웠다. 집으로 돌아오면서도 오래오래 생각하고, 일기장인가에 썼다. 내 문턱을 낮춘다고 해서, 내가 없어지지 않는다는 것. 다른 것들을 받아들여도 변하지 않는 부분에서 진짜 나를 알게 되리라 나를 믿어 보자고. 문턱을 낮추면서 오히려 좀더 독립적인 사람이 될 수도 있겠다고. 그건 스물다섯의 나에게는 '할'과 같은 순간이었다. 좀 다르게 강해지는 방법을 배웠달까. (한동안 내 닉네임은 '쫌 강하고 쫌 다른' 사람이 되고 싶은 마음을 담은 强異였다.)
그 학기로 대학원 학점을 모두 이수하고, 논문 주제를 고민하는 동안, 어느 날 두통약에 취해 꾼 낮꿈에, 나는 사막 입구에 있는 하얀 집에 들어갔고, 그곳은 여성들만이 모인 수도원 같은 곳이었다. 내가 아는 얼굴들이거나 모르는 얼굴들이 나를 그저 지나가는 순례자처럼 맞아주었다. 내 지도교수을 닮은 그 집의 장로는 내게 수도원 곳곳을 친절히 안내해 주었다. 건물 안쪽에 중정 옆에 하얀 욕조가 담겨 있고 조한의 얼굴을 한 백발여인이 물속에 온몸에 얼굴까지 담근 채 명상중이었다. 그리고 그 집을 나는 혼자 나와 사막을 여행했다. 길에서 어떤 큰 바위를 만났다. 뒤에서 쫓아오는 사람이 있어서 나는 그것을 뛰어 넘어야 했다(그런데 현실의 나는 모든 육상종목에 매우 취약하다). 어쨌든 뛰었다. 허공에서 뛰는 순간, 어떤 존재가 나타나 내 손을 잡고 함께 뛰었다. 뛰어넘고 나서는, 나는 다시 혼자 여행을 했던 것 같다. (꿈을 꾼 당시에는 그 존재가 내 아니무스인가 하고 생각했지만, 지금 이 글을 쓰다 보니 인생에서 어떤 순간에 어떻게든 만날 수 있는 조력자일 수도 있겠단 생각도 든다.)
이 꿈은 오랫동안 잊었다가, 재작년에 다시 공부를 하기로 한 다음에 또문의 반달집을 가운데 두고 위아랫집으로 나란히 이웃에 사는 두 선생님을 무주에서 만난 다음에 기억이 났다. 그날 저녁에 반달집 마당에 앉다 우리 선생님한테만 살짝 고백을 했었다. "넌 뭐 그런 그리스신화적인 꿈을 꾸냐?"고 선생님은 까르르 웃으셨다. 옛날옛적엔 그런 꿈을 꾼 것도 막 혼자 비밀이고 그랬는데, 나이도 들고, 이런저런 사연을 거쳐 나를 찾아가면서, 어떤 위치나 시선에 매이지 않고 한번쯤 얘기하는 것도 (여전히 부끄럽지만) 기분 좋다.
조한 샘이 이 글을 보시진 않겠지만, 은퇴 후에도 건강하게 활발한 활동 이어가시길 바랍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