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가을에 리옹에 강연하러 온 하워드 베커에게 질의응담 시간에 "당신이 사회과학을 하는 데 있어서 글쓰기의 역할이 뭔가요?" 하고 물어본 적이 있다.
그리고 즉답을 들었는데... 현장에선 베커가 나에게 "음, 아주 big question이군요"라고 말하는 것만 듣고 좋아하고, 답 자체를 꼼꼼히 듣지는 못했다. (80대 할아버지셔서 목소리가 크질 않으심;;) 강연 동영상을 기다렸는데, 석 달 후에 올라왔고 지금껏 모르다가 오늘 아침에 찾았다.
내가 나를 격려하는 차원에서 내 질문에 대한 대답을 다시 찾아 들었다. 답은 그러니까 "내가 뭔가 아는 것 같지만 쓰다 보니까 알게 되는 거지, 정말 아는 게 아니었어요. 글쓰기는 나에겐 참 신비해요"라고 시작한다. 그러고 보면, 나는 쓰면서 생각하질 않고, 생각을 웬만큼 하고 쓰기 시작해서 시간이 항상 모자라다.
물론 미리 생각했다가 쓰면서 생각을 안 하는 건 아니다. 그 과정은 그 과정대로 있는데, 잘 모르니까 미리 생각을 너무 하다가 정작 글을 시작했을 때는 지쳐서 다른 데로 빠지거나, 중요한 얘기는 이미 혼자 다 생각했으니까, 개념 정의 안 하고 디테일로 건너뛴다거나...
암튼 핵심 아이디어만 있는 상태에서 일단 쓰기 시작하는 마음이 조금 더 필요하려나. 내가 뭘 아는지, 내가 뭘 모르는지 다 쓰면서 하나씩 체크하는 거지... 그럼 정반합 사고 과정이 좀더 드러난 글을 쓸 수 있을까, 증명 없이 결론으로 바로 뛰는 글 말고... 아이고, 글쓰기에 대한 성찰 그만하고 다시 그냥 쓰러 가자...

posted by amiedam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