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연구소에서 박사생 동기 겸 친구랑 점심 먹으면서 이런저런 얘기를 하는데, 친구가 내 말투 가지고 잠깐 얘기를 했다.
내 말투라는 게 끝까지 들어보지 않으면 절대 논점을 파악하기 힘들 발화구조인데, 이건 불어가 문제가 아니라, 말하면서 생각을 계속 발전시켜 나가는지라, 나도 내가 정확히 어떤 얘기를 할지 다 생각하고 말하는 건 아니다. 게다가 불어로 생각해서 말하려니 머리는 더 바쁘다. 그러니 미리 내가 무슨 얘기하는지 정확히 포인트를 알려주기가 힘들다.
발화 코드가 정해져 있는 학술 담화나 논문 쓸 때는 당연히 좀더 주의를 해야 하고, 고칠 필요가 있는 습관이니까, 친구가 어떤 어떤 식으로 고쳐 보라고 제안하는 얘기를 덤덤한 얼굴로 들었다. 다른 사람들이 어떻게 생각하는지는 별로 신경쓰지 않지만, 가끔 지도교수와 논문 관련해서 소통할 때 자꾸 갭이 생기는 부분을 해결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친구도 말하기 미안해 하면서도, 내가 덤덤한 얼굴로 들으니까... 내가 외국인 억양도 있는 데다가 말하는 방식도 낯서니, 남들이 안 듣게 되고... 자기가 보다가 열받는 일이 여러 번이었다는 거다. 그래서, 어떻게 하면 그걸 바꿀 수 있을까 혼자 고민을 했나 보다. 말하기 전에 상대가 한 얘기랑 내가 앞으로 하려는 얘기랑 뭔가 연결이 될 거 같다고, 그 말 한마디만이라도 해서 주의를 끌라고 말이다.
프랑스 사람들이 그렇게 하긴 하는데, 사실 나는 들으면 지루하다. 한국인이라 그런지, 내 인지구조 탓인지 모르겠지만, 쓸 데 없는 군말이랄까. 어쨌든 8년 동안 못 배운 걸 보면, 나랑 잘 맞지는 않는 듯. 물론 발표/강의/논문에는 적용하려고 신경을 쓰지만 말이다.
암튼 친구가 얘기를 꺼낸 것도 좋은 의도에서고, 나도 "그래, 너랑 있을 때 조금 더 연습을 해볼께. 너도 도와주렴."이라고 말은 했지만, 사실 마음을 안 다치기는 어렵다. 별로 안 친한 사람한테 그런 얘기를 들어도 소화 시키고 흘려보내는 데 이삼 일 걸리는데, 제일 친한 박사생 동기가 그랬으니... 속이 꽤 많이 상한다.
친구도 집에서 큰딸인지라 보호자 스타일인지도 알겠고, 자기 자신에게도 깐깐한 편인지라, 친한 친구인 내가 남들한테, (자기 생각에는) 있는 실력만큼 인정 못 받는 것도 안타깝겠지. 30대 초반이라 커리어/사회적 인정 문제에 훨씬 더 민감하기도 할 테고... 나도 30대 초반엔 그랬던 것 같다. 그래서 남들이 청하지 않아도 충고도 많이 했다. 그게 또 그 나이 때의 열정이고, 우정인 것 같다.
하지만 나는 친구가 자학할 때 긍정적인 얘기하는 거 빼면, "너는 이게 문제다" 하는 법이 없고, '자기 생긴 대로 감당하고 살겠지. 자기가 정말 필요하다고 느끼면 나중에 고치겠지' 하고 마는 편이다. 그렇게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게 우정이고, 또 애정이라고 믿는다. 때로는 적용하기가 쉽지 않지만 그렇게 하려고 하는데... 이 친구도 그런 줄로만 알았는데... 후... "남들 눈엔 네가 제대로 안 보인다"라는 걸로 나를 고치려 들다니, 뜻밖의 한방이었다. 남들 눈에 어떻게 보이는가 보다는, 내가 나 자신에게 충실하고 그 속에서 나를 발전시켜 가는 게 어쨌든 나에게는 더 중요한데 말이다... 그게 40대의 힘 아니겠나. 아까 그 얘기는 했어야 하는데, 그게 좀 아쉽다. 다음에 그녀가 비슷한 시도를 하면, 그때는 제대로 방어해야지.
친구가 요즘 논문 때문에 예민해져서 완벽주의가 심해져서 주변에 완벽하지 못할 걸 더 못 참는 것 같다. 그래도 내 입장에서는 아프고 속상하고 그렇다. 내 말에 정말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내가 억양이 안 좋든, 말하는 구조가 산만하든, 어쨌든 듣기 마련이고, 나도 그런 사람들을 내 친구라고 생각하는데 말이다. 거기서 약간 에고가 나오면서 화가 나려고 하는데, 여기다가 조금 늘어놓는 걸로 한 시름 놓으려고 한다. 주말에 명상 또 많이 해야지...
써 놓고 보니, 역시 이 글도 나의 구어체 발화구조와 별로 다르지 않구나. 마음 아픈 걸 조금 내려놓으려고 두서 없이 쓴 글이니... 하는 수 없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