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 5. 27. 21:37 삶의 한때

봉준호 감독이 신작 영화 <기생충>으로 2019년 칸 국제영화제 황금종려상을 받았다. 일단 상을 받자, 한국의 언론이나 문화계 인사들이 봉준호 감독이 소설가 손자, 그래픽 디자이너 아들, 영문학자 동생 등으로 엄친아/천재로 형상화되는 유전자주의를 환기하는 얘기들을 많이 한다. 나는 그보다는 그가 넷플릭스가 제작, 배급한 영화 <옥자> 연출 경험을 통해 어떤 글로벌 감각을 얻었고, 그것이 다시 한국 출신의 글로벌 영화제작사인 CJ 스태프들과 어떤 협력관계를 구축해서 <기생충> 제작과 연출에 다시 투입되었을지, 달리 말해, 봉준호라는 영화감독의 글로벌 문화자본, 사회자본 활용을 사회학적으로 어떻게 재현해서 분석할 수 있을지, 그런 게 궁금하다. 출판사 다닐 때도 편집자 병이 있었지만, 사회학자로서 사회적/지리적 모빌리티와 문화자본 사이의 동학을 질문하는 논문 틀을 준비하다 보니, 거의 저절로 품게 되는 질문이다. 

구조와 제도에 관심을 가져야 하는 사회학자로서 나는, 봉테일 씨가 90년대 초반 연대 사회학과와 90년대 후반 한국 영화아카데미에선 뭘 배웠고, 그의 가치들이 한국 사회를 어떻게 재현하고, 또 편집해 왔는가 하는 영상 커뮤니케이션 학자들이 던질 법한 질문 이상으로, 그게 감독 개인의 역량 확장일 뿐 아니라, 한국 사회구조 안에서, 또 영화산업 구조 안에서 한 영화감독이 어떻게 성장하고 진화할 수 있었는지, 그리고 그 성공을 바탕으로 글로벌 온라인 영화 <옥자>를 연출하면서 다국적 배우/스탭/제작자들과 함께 글로벌 대중을 대상으로 이미지와 감정을 소통하는 방법으로서의 문화자본, 사회자본을 획득하면서 또한 자신이 쌓아온 한국적 컨텐츠들을 글로벌 컨텐츠로 변환시키는 전략들을 세우게 되었는지, 이런 질문들에 대한 답을 들으면 상당히 재밌을 것 같다. (물론 이러한 내가 이런 내용들을 다 알아야 할 필요는 없다. 특히나 올해는 내 전공을 충실히 공부해서, 논문을 마치기로 결심했기에 더 그렇다.)

그와 별개로, 봉준호 감독이 선보이는 꼼꼼하면서도 강력한 이미지들의 변태스러움을 대단하다 생각하지만, 사실 개인적으로 많이 좋아하지는 않는다... 시각적으로 너무 강한 이미지들은 나를 심란하게 만들어서, 자주 가까이 하고 싶지는 않다. 꼭 그런 이미지들을 영화로 찾아서 안 봐도 내 꿈에 자주, 생생하게 나온다. 독특한 이야기들을 이미지보다 텍스트와 구술로 접하는 게 내 내면의 평화을 지키는 데는 좋다. <살인의 추억>과 <괴물> 이후 봉준호 영화를 찾지 않은 이유가 그것인데, 그래도 <기생충>은 이례적으로 한 번 보러 갈 것 같다. 다음 주에 개봉한다니까, 하루 이틀쯤 심란해도 괜찮겠지 뭐.

영화 <기생충>의 황금종려상 수상에는 한->영 번역을 한국에 오래 산 미국인 영화평론가 달시 파켓 씨가 했다는 사실도 한몫 한 듯싶다. 한국 문화도 잘 알고, 한국어의 뉘앙스를 섬세하게 살려 영어 의역을 했다고 한다. (관련기사) 황금종려상 수상소식에 우리 합창단 분들도 영화 보러 가겠다고 나한테 한마디씩 하던데, 불어 번역은 누가, 어떻게 하려나? 영어 대본을 불어로 옮길까? 한국어 대본을 불어로 바꾸려나? 하는 호기심도 생겼다. 

posted by amiedam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