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으로부터 49년 전, 할아버지 돌아가시고, 아버지는 유산으로 논 두 마지기를 나눠받으셨다. 그 땅을 (당시 법으로 미성년자라 유산 못 받은) 당신 막내동생이 결혼할 때 증여하셨던 아버지는 은퇴 후에 다시 고향으로 가셔서 본인 이름으로 (빚을 내서) 다시 논을 사셨다. 농부의 아들로 태어난 아버지에게, 땅 없이 시골에 산다는 게 맴이 영 허전하셨던 모양이다(물론 농업인에게 주어지는 각종 혜택을 위한 실용적인 목적도 있다).
엄마 말씀으로는... 새로 산 그 땅은 기업농에게 빌려주셨고, 그 땅에서 나온 소출로 가을에 쌀 네 가마니를 받으신단다. 엄마, 아부지 두 분이 1년에 합쳐봐야 쌀 20kg 드시고, 나와 둘째는 외국 살고, 막내는 집에서 밥을 잘 안 하는 등의 이유로... 그 쌀 네 가마니는 바로 기부하신다니, 집안의 공덕으로 쌓이겠지?
아부지는 40대에 토요일마다 민족문화추친회(현 한국고전번역원)에 가셔서 몇 년에 걸쳐 <논어>, <맹자> 수업을 들으셨다. 그때 강의하신 한학자 선생님께 60대 이후 다시 연락을 드려, 인연을 이어가셨다고. 그분에 우리 집에 한번 오시는 길에, <受祿于天>(수록우천, 하늘에서 녹을 받다)는 중용의 글귀를 서예로 써서 선물해 주셨단다.
실은 그 유~명한 한학자 선생님께서, 그 좋은 글씨를 무려 여섯 편이나 써주셨는데... 남에게 퍼주기 좋아하시는 아버지는 "수록우천" 한 편만 남기고, 또 나머지 글씨들은 달라는 사람들에게 나눠주셨다고 한다(아이고, 아까워라 하는 나는 소인배^^). 아버지에겐 "수록우천"이 제일 나아 보였나 보다. 그게 행복하신 우리 아부지다.
"수록우천" 이야기는 그저께 부모님 댁 갔다가 아부지가 해주신 얘기다. 그 전에 땅과 쌀 이야기는 전부터 알던 집안 사정이다. 기록 삼아 적어둔다.
2024. 11. 27. 22:44
삶의 한때/기억의 한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