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 12. 27. 06:00 삶의 한때

9월 초부터 12월 초까지, 100여 일간 한국에서 가을을 난 후, 12월 17일에 파리 집으로 돌아왔다. 6개월째 계속되는 공사 마무리 단계의 어수선함과 전력 승압공사가 잘못 되어, 하루에도 20번씩 두꺼비집이 내려가면서 날은 추은데 난방도 제한적이고, 요리를 하기도 힘들어 식사도 부실하고... 여러 가지 불편을 겪고 있다. 프랑스 생활에서 처음 겪는 일은 아니라, "이 또한 지나가리라~" 하면서 그냥 넘기기도 하지만, 일주일 넘게 추운 데 불편이 계속되니, 몸은 힘들다.
그 와중에 집주인은 새로운 공사를 시작한다며, 큰 길 건너 본인 소유의 다른 집으로 이사를 하라고 했다. 전혀 계획에 없던 일이고, 이사를 하는 게 나한테는 보통 일이 아니라 처음엔 반발했다가, 앞으로의 공사 때문에 소음에 시달려서 노이로제에 걸릴 일이 걱정이 되어.... 결국 이사를 하기로 했다. 파리에 돌아와 며칠 시차적응만 하면, 11월에 구상한 글을 쓰려고 했는데... 갑자기 이삿짐을 쌀 형편이다. 몇 년째 도돌이표처럼, 계획을 세우고, 몸이 아프고, 슬럼프에 빠져 일에 덤벼 들지 못하고, 자신감이 떨어지고... 이런 반복을 겪는 게 이제 지겹다. '별 일 아니다, 이 정도는 넘길 수 있다' 생각해 보지만, 몸은 스트레스를 받아, 4년 전에 찢어진 등 근육의 통증이 돌아왔다. 아침에 일어나서는, 등은 아프고, 이삿집 쌀 일은 막막하고... 사는 게 좀 서러웠다. 
2020년 2월에 처음 다쳤을 때만큼 찢어지는 고통은 아니지만, 2022년에 한 달 넘게 침도 맞고, 매일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몸을 풀고, 특히 등근육 풀기 운동을 열심히 해서... 다 나은 줄로만 알았다. 그런데 그제, 이사 문제로 너무 긴장을 해서, 운동을 하는 데 집중을 할 수가 없었다. 등근육이 제대로 풀리지 않은 채 생활하다 보니, 저녁에 예전에 근육이 찢어진 자리가 다시 아프다. 근막 통증이다. 운동을 하고, 찜질을 하고, 근육 젤을 바른다. 다시 심해지지 않길, 조금씩 다시 나아지겠지, 믿어 본다. 
사실 상황이 나쁘지만은 않다. 이사 갈 집은 지금 머무는 곳보다 작지만, 그만큼 월세가 저렴하다. 집의 문제로 이사를 하게 된 거라, 옮기는 집의 월세를 특별히 깎아 주셨다. 더구나, 봄에 몇 달씩 한국으로 돌아가 있는 동안 월세를 받지 않고, 내 짐을 보관해 주시겠다는 파격적인 제안까지 해주셨다. 갑작스레 이삿짐을 싸려니, 속이 좀 시끄럽기는 하지만... 한국의 불안정한 정치 상황 때문에, 환율이 오르는 힘든 시절에... 월세가 싼 집으로 옮기고, 또 월세를 내지 않고 한국에 몇 달 다녀올 수 있는 것은 경제적으로는 큰 도움이 되는 일이다. 몸의 통증이 돌아오니 쉽지는 않지만, 좋은 쪽을 열심히 보려고 노력을 한다. 그래도  사실 내 본심을 있는 그대로 인정하자면, 이사를 하고 싶진 않다. 짐을 싸는 것도 큰일이고, 짐을 풀고 새 집을 정리하고... 그러다 보면, 내가 지금 쓰고 싶은 글을 또 잊어버릴고 산만해질 게 걱정이 된다. 나한테 이상적인 상황은, 집주인 분들이 2달 정도 새로 시작할 공사 계획을 꼼꼼하게 세우시고, 나는 그 사이에 글을 쓰고, 지금 사는 집에서 내가 사는 방만 월세를 받으시고... 내가 한국으로 떠날 때 내 짐을 몇 달 맡아주시고, 내가 떠난 집을 월세를 올려받아 새로 세를 내놓으시고... 등등으로 서로 무리하지 않고, 서로 윈-윈하는 상황이다. 그리고 한국에서 숙원사업인 2급 한국어 강사 교육을 받고, 온라인으로 한국어 과외를 하거나, 한국에서 돈을 좀더 벌고 해서... 여름이나 가을에 돌아와, 수영장과 공원이 있는 이 동네에 내 형편에 맞는 좋은 집을 다시 구해서 조용히 글을 쓰고, 내가 할 수 있는 활동들을 이어가면 좋겠다. 소원은 내 마음대로니까, 그리고 이 글은 나만 읽는 일기니까... 내가 원하는 대로 다 써본다. 

아무튼... 이번에는 몇 달간 계속된 등의 통증 때문에 지적인 일을 하지 못할 것 같은 좌절잠에 빠져, 코로나 락다운이라는 상황에서 유투브 중독에 걸렸던 그런 폐인 모드로 돌아가지 않을 것이다. 잘 쓰든, 못 쓰든, 내가 생각한 글을 조금씩 쓸 것이다. 누구에게 보이기 위한 글이 아니라, 내가 생각한 그 내용을 내가 글로 쓸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나에게 치유가 되고 힘이 될 거라고 믿어 보면서... 

posted by amiedam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