늦은 아침 먹고, 설거지를 하고, 침대 시트를 갈고, 침구 세탁을 돌리고, 마당을 쓸고, 집안에 청소기를 돌렸다.
보통은 일요일에 하는 일인데, 토요일 밤에 뜻밖의 상황으로, 큰 모임에 갔다가 지인 집에서 외박을 했다. 어제 오후 일찍 돌아왔지만, "낯선 사람 많은 모임+뜻밖의 외박+지인 부부와 수다" 3단 콤보의 후유증으로, 저녁에 가볍게 호박죽(귀리와 단호박을 전기밥솥 죽 메뉴로 익힘)만 끓여 먹고, 집에서 가만히 쉬었다. 나이가 들수록 점점 더 내향형 인간이 되어간다.
여엉 눈에 거슬리던, 몇 년째 장롱에 끈적하게 붙어 있었을 포장 테이프를 떼어내고(feat. 드라이기, 지우개), 장롱 뒤 거미줄과 거미 사체와 먼지들도 거둬냈다. 아이고, 이사 가는 셋집마다 내가 구석구석 묵은 때를 벗겨주고 다니네. 귀찮지만 내 건강을 위해 어쩔 수 없다. 나를 사랑하는 방법이고, 또 다음에 살 세입자에게 보시한다 생각하며, 굳이 의미를 부여해 본다. 청소할 때 몇 년간 쌓인 먼지를 보면 한숨이 나오지만, 다 치우고 나니 개운하다.
오랜만에 렌틸콩을 넣고, 야채수프를 끓였다. 커리가루가 없어서 못 넣고, 오레가노만 넣었더니 맛이 조금 심심했다. 깊은 맛을 내고자 한국에서 유행하는 대로 버터를 추가했다. 맛은 확실히 고소해졌는데 속은 조금 더부룩하다. 역시 내 위장은 프랑스 버터보다는 올리브유 위주인 지중해식 식사를 좋아하나 보다. 렌틸콩이 없으면, 버터를 넣어도 괜찮겠지만, 렌틸콩만으로도 포만감은 충분하니까... 다음에는 커리가루랑 버섯으로 깊은 맛을 내는 게 좋겠다. 유행하는 음식 따라하기보다, 내 몸의 이야기를 잘 듣는 게 제일 중요하다. 건강한 중년이란 그런 것이다.
오늘의 특별한 행복. 2주 전에 줄기를 잘라 물꽂이를 한 점박이 식물이 드디어 순을 내놓기 시작했다. 뿌리 부분과 잎 부분만 남기고 줄기를 반으로 잘라서, 윗 부분은 물에 담그고, 아랫부분은 화분에 남겨 두고 매일 들여다 보았다. 혹시 뿌리와 새 잎사귀가 나지 않고 죽어버리면 어떨까 걱정도 하고, 너무 들여다 보면 마음이 초조해질까 싶어 일부러 안 보이는 곳으로 자리를 옮겨보기도 했다. 드디어 보름 만에... 뿌리 없이 잎사귀와 줄기만 물에 담근 쪽에 새 뿌리가 될 순이 나오고, 잎사귀가 없이 줄기와 뿌리만 남긴 화분에서는 새 잎사귀가 될 순이 나오기 시작했다. 휴, 다행이다. 반갑고 또 기쁘다. 물 너무 많이 주지 말고, 잘 자라라고 매일 눈 맞추며 축복만 해줄 거다. :-)
블루스카이 타임라인에 적었던 오늘의 생활기록들을 블로그로 모아서 옮기고 나니, 꺽꽂이한 점박이 식물이 드디어 새순을 내준 것처럼, 과거로부터 잘라내 현재에 뿌리를 내리고, 또 미래로 향하는 새 잎사귀를 내려는 내 마음에도 조금 더 용기가 난다. 그렇게 새순 소식에 기뻐하다 보니, 계속 기다려도 들려오지 않는 윤석열 체포 소식도 결국엔 듣게 될 거고, 한국 사회의 회복과 민주주의 발전도 이루어지리란 희망마저 올라온다. 고맙다, 사랑하는 반려식물 점박아~ 우리 인내심 갖고 튼튼하게 같이 잘 성장하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