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 4. 18. 02:01 삶의 한때

글쓰기도 나로부터 먼저 시작해야 그 논리를 완성할 힘을 얻는다. 내가 프랑스식 삼단논법에 맞춰서 억지로 생각하려 들면, 영영 글이 안 나온다. 일단 생각나는 대로 쓰고, 나중에 퇴고할 때 삼단논법으로 정리하는 게 그나마 내가 불어로 글을 쓸 수 있는 방법이다. 프랑스인들 중에서도 삼단논법이 불편한 창조적 사유자들은 마인드맵 그려가며 그렇게 한다.


작년 가을부터 심리상담을 진행하면서 내가 글쓰기를 어려워하는 이유 중 하나로 찾아낸 게, 감정 표현을 절제하는 경향이다. 표현을 아예 안 하는 건 아니고, 균형을 잡으려는 경향이 강하다. 게다가 다른 사람의 입장, 심지어 반대파나 가해자들의 입장까지 이해해 보려는 시도를 하다 보니... 맥락 파악은 잘하는데, 메시지가 불분명한 게 문제. 


문제는 예전부터 알고 있었지만, 원인을 파악한 이후로 너무 균형 갖추려고 하지 않고 일상에서부터 할 말을 거침 없이 하려고 노력중이다. 이게 마음을 먹기가 어려워서 그렇지, 마음을 먹으니까 겉으로는 상당히 금세 바뀐다. 하지만 속으로는 무척 피곤한 노력을 하며 해도 되는 말 해놓고도 혼자서 벌렁벌렁 가슴이 뛰어 산책이라도 나가서 마음을 가라앉히곤 한다. 참, 논문 쓰려고 별 짓 다한다 싶다. ㅎㅎㅠㅠ


그런데 애초부터 할 말 못하던 사람은 아니고, 사실 깊이 생각 안 하고 직설하다가 다른 사람 상처 준다고 직장 다닐 때 자꾸 구박을 받아서, 우아하고 외교적인 말투를 자꾸 개발하다 보니, 직설적인 말투가 퇴화한 데다 외국 와서 말 제대로 못하고, 오래 중단했던 공부 다시 시작한 후 기죽어 지내니 한동안 내 본성이 어땠는지 까먹고 있었다. 원래 타고난 건 쌈닭 기질... 친가와 외가 양쪽 다 볼 때 유전적인 원인이 확실히 있다.


초등학교 때부터 남자애들한테 말이나 글로 진 적 없고, 철학과 들어가서도 말을 안 해서 그렇지, 말을 시작해서 남자들한테 밀린 적은 없다. 다시 야성이 살아나고 있을 뿐. 논문 쓰기엔 여러 논리구조와 학술 코드가 필요하지만, 근본적으로 야성과 투지로 써야지 하고 나 자신을 조련중이다. 아이고, 어렵다;;


posted by amiedam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