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 1. 7. 17:12
삶의 한때
편집자라는 진로를 결정할 때는, 책을 좋아해서라는 이유도 있지만, 남을 도와주기 좋아해서라는 성격이라는 이유도 있었다. 하지만 근 10년쯤 계속하니 남을 도와주기만 하는 직업은 나한테 남는 게 없는 느낌이 너무 오래 계속되었다. 물론 편집자란 직업 자체가 그렇진 않다. 편집자로서의 전문성도 있고, 분야의 전문성도 있다. 다만 조직 내에서 전통적인 방식으로 자기 전문성을 키우기가 점차 어려워지는 출판노동 조건에서 나도 뭔가 내 것을 갖고 싶다는 마음이 들었다. 이러면 보통 자기 걸 쌓고 싶은 편집자들은 창업을 하는 경우가 많은데, 나는 이런저런 사연이 엮여 박사논문을 준비하게 되었다.
어학과정 밟고 논문 준비하는 지난 8년간 앞으로 뭐가 될지 고민도 많이 했지만, 아직 분명하지만은 않다. 가능성들을 따라 한발 한발 옮길 뿐이다. 다만 타고난 성격을 바꿀 수는 없는지라, 내 것만 챙기는 건 못할 것 같다. 조금 업그레이드해서, '남이 스스로 잘하도록 도와주는 역할'을 뭔가 하고 싶다. 그래서 내 강의는 내가 가르치는 것보단 내가 학생들에게 "여러분의 본능과 직관을 믿으세요. 틀려도 상관 없어요. 같이 고치면 되니까." 하는 식의 연습문제를 주고, 나중에 결정적으로 틀린 걸 잡아주거나 잘한 걸 칭찬해 준다. 선생 역할의 매니저화랄까... 하여간, 앞으로 계속 이 방향으로 나가려면 내(초자아)가 나(자아)한테 일을 잘하도록 도와주는 경험을 쌓자. 이제는 내가 내 매니저고 선생님이다. (세상 전체가 학교라는 전제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