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 3. 24. 00:39
삶의 한때
오늘은 장터에서 정어리를 샀다. 정어리가 살이 오르는 철이다. 김치에 지져 먹을까 했는데, 야채장수가 납작 파슬리를 공짜로 듬뿍 주는 바람에 파슬리를 쓰려고... 담백하게 지리로 끓였다. 무와 다시마를 넣고 끓이던 육수에 정어리와 쪽파, 생강, 마늘, 소금을 넣어 익혔다. 불을 끄고 미나리 대신 파슬리를 올려 잠깐 뚜껑을 덮었다가 밥과 김치에 곁들여 먹었다. 담백하고 순하고 싱싱한 맛이었다.
생선장수에게 정어리 500그램 달라고 했는데, 생선장수가 (1유로어치라도 더 팔려고 그랬는지) 650그램을 담아 놓고 쬐금~ 넘어갔다고 우겼다. 도로 덜어내라고 할까 하다가, 들고 있는 짐, 즉 먼저 산 과일과 야채가 무거워 말 길게 하기 귀찮아서 그냥 담아준 채로 받아왔다. 집에 와서 봉지를 열어보니 여남은 마리다.
손으로 문질러 비닐을 벗겨내고 찬물에 한 마리씩 헹궈, 여덟 마리는 정어리 지리를 끓이고, 다섯 마리는 굵은 소금을 넉넉히 뿌려 냉장고에 넣어 두었다. 정어리에 간이 들고, 밤에 기온이 떨어지면 창 밖에 내놓아 조금 꾸덕하게 말려서 얼릴까 싶다. 한 마리씩 구워서 밥 반찬으로 먹어야지. 매일 먹지는 않을 테니, 다 먹으려면 보름 넘게 걸리겠다.
정어리 조림 대신 (들어본 적도 없는) 정어리 지리를 만드는 일. 살아온 문화의 습관에서 벗어나는 일, 몸에 익혀온 입맛을 바꾸는 일을 할 때마다 마음에 작은 저항이 이는데, 새로운 도전을 하는 쪽으로 잘 넘어가곤 한다. 그러나 내가 어떤 사람인지 조금 헷갈릴 때는 한국에서 먹던 음식이나 부르던 노래들을 다시 찾는다. 여전히 좋은 것도 있고, 이제는 맞지 않는 것도 있다. 그렇게 내가 어떤 사람으로 남았는지/변했는지 가끔 확인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