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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3.06.07 친구 연애도 꿈으로 아는 여자
2013. 6. 7. 06:23 우정의 한때

월요일 새벽에 전에 꿈에서 우리 한국어 과외 제자이자 이제는 절친이 된 S씨를 만났다. 바로 미국에서 인류학 박사과정을 밟는 J가 리옹에 놀러온 기념으로 조직한 조촐한 저녁모임에서 기분 좋게 밥 먹고 와인 마시고 잠들었다가 새벽 꿈에 나타난 것이다. 얼마 전 여름방학 시작하기 전에 상진씨가 갑자기 레스토랑에 초대해서 둘이 와인 한 병 마시며 좀 속 깊은 얘기도 하고, 그러면서 한층 더 친밀함을 느끼던 터라... 꿈에 나타날 수는 있지만, 너무 해맑게 웃으면서, 평소 같으면 하지 않을, 어떤 전형성을 띤 행동을 했다. 무슨 예지몽 같아서, 잠에서 깨서, 비몽사몽인 채로 바로 아이폰으로 흔한 한국식 꿈해몽을 검색해 보니, 그로부터 어떤 새로운 소식을 듣는다는 거다. 그런데 월요일 점심에 갑자기 그에게 한 여자친구가 갑자기 찾아와서 저녁에 과외를 못하겠다면서 문자가 왔다. 그래서 나는 오래전부터 아는 프랑스 여자친구가 놀러와서 저녁이라도 먹자고 했나 보다, 그러고 좋은 시간 보내라고 기분 좋게 대꾸했다. 그러면서 이것이 그 소식인가, 좀 싱거운데 했지만... 

그랬더니 어제 과외 끝나고 집에 펜팔 친구가 놀러왔다면서 (평소 수업 후 30분씩 떨던 수다를 마다하고) 집으로 달려가는 것이다. 음, 한국인 펜팔 친구가 여럿 있고, 그 중에 어떤 여자사람이 리옹에 놀러올 예정이라는 것은 전부터 들었지만, 입양인인 그가 서른 살까지 전혀 인정하지 않던 자신의 한국 정체성을 받아들이기로 결심하고 한국어 과외도 일주일에 세 번이나 받고(그래서 우리가 과외 선생-제자이자 갑작스레 베프가 되었다랄까), 한국 관련 기사 읽고 리옹에서 한국 친구들만 줄줄이 만나고 그러는 줄 알았기 때문에 그동안은 별로 대수롭게 생각하지 않았다. 그런데 엄마가 리옹에만 놀러오셔도 나에게 미리 말하곤 하는 (과외 시작 전이나 후에 그날 있었던 일들을 서로 얘기하는 편인데... 그는 얼개만 말하고 나는 디테일까지 다 말하지만 하여간...) 상진씨가 펜팔 친구 도착을 어제 과외 시작 전에 한 마디도 안 했다가 과외 끝난 다음에 바로 집에 가야 한다고 해서 그것도 조금 놀랐다. 그럼 이게 그 소식인가... 이것도 뭐 그리 재밌는 건 없는데. 그런데 뭔가 망설이는, 살짝 켕기는 표정에... 이 친구가 평소에 워낙 해맑은 친구라 (게다가 문제의 꿈에서도 정말 다섯 살짜리처럼 해맑게 웃었다) 무언가 갑작스럽고 평소랑 다른 느낌이 들었다. 음, 이거 뭔가 냄새가 난다... 그랬다. 엇, 그 펜팔 친구랑 연애라도 하게 되려나, 그게 나의 예지몽이었나? 

그런데 오늘 와서 고백하기를, 실은 얼마 전부터 그 펜팔 친구와 온라인 연애중이었고(정확히 말하면 카카오톡 연애) 그녀가 갑자기 리옹으로 와서 (그래서 월요일에 과외도 갑자기 쉬었다는 걸 실은 이 글을 쓰면서 깨달았음) 직접 만나보니 서로 너무 마음에 들어서 더더욱 사랑에 빠졌다고... 아 이것이었나. 그렇다면 내가 꾼 꿈은 그녀가 리옹에 오는 데 대한 꿈이었지 않나!! 아니 나는 뭐 친구 연애까지 꿈으로 안단 말인가, 남의 태몽을 대신 꿔주는 것도 아니고!! ㅋㅋ 

하여간 내가 "안 그래도 너 어제 표정이 뭔가 수상쩍더라고, 내가 냄새 맡았다. 실은 꿈도 하나 꿨는데, 너한테 좋은 소식 있다는 꿈이었다" 불라불라 했더니 자기 연애에 더욱 좋은 징조로 여겨졌는지 무척 기뻐했다. 입양인인 그 친구가 아직 친부모는 못 찾고 한국을 방문할 준비중이어서, 내가 한국으로 떠나기 전에 좀 마음에 걸렸었는데.... 한국 정체성을 되찾기로 결심한 지 반 년 만에 한국 여자친구도 생기고, 게다가 그녀가 그렇게 갑자기 리옹으로 와서, 그에게 어떤 확신을 줬으니 정말 감동적이었단다. 나도 듣는데 참 기분이 좋더라. 또 여기 엄마랑 형 다음에, 내가 자기에게 중요한 사람이라고 나한테 여친 생겼다고 말해줘서 그것도 참 고마웠다. 

그가 집으로 간 다음에, 그와 모두 친구가 된 우리집 티보군과 쥐디트에게도 소식을 전했는데... 티보 말에 따르면 내가 어찌나 만족했던지 지금까지 중에 불어를 제일 빠르게 하고 하나도 망설임 없이 얘기를 불라불라 해서, 좀 웃기기까지 했다고... ㅎㅎ 그 얘기를 하면서 티보군에게, 지금까지 자기가 만난 하우스메이트 중에 내가 최고의 하우스메이트라는 극찬까지 받았다. 그것도 참 고맙다. 물론 내게 최고의 하메는 아직은 빛군이기에, "티보 너도 내게 최고의 하메야."라고 말할 수 없어 조금 미안했다만. 뭐 하여간 또 훈훈한 수다는 늘어지고... ㅎㅎ 티보야, 나도 너 때문에 재미있었고, (네가 수다장이라 좀 피곤하긴 했지만 그래도) 불어 듣기도 많이 늘었단다... 하고 말해줬어야 하는데... 여름방학 시작 전에 다음 주에 거창한 저녁식사 하기로 했으니까 그때 말하지 뭐. 

그러나 저러나 남의 연애 예지몽 꾸지 말고, 내 연애 좀 예감해 보자. 어째 보이는 게 하나도 없나. 근데 나는 참, 주변에 나를 큰누나로 여기는 남자사람 친구만 점점 늘어난다...?  나도 외롭고, 또 네가 너무 보고 싶었던 나머지, 차라리 무감각해져 버리기까지 한데... 아니면, 이런 채로 공부 더 열심히 하라는 하늘의 계시가 결론인가. 내 본심은 이제, 나도 잘 모르겠다. 


posted by amiedam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