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 10. 16. 03:14 삶의 한때

연구실에 세네갈 출신 동료가 있다. 개인적으론 하나도 안 친하다. 일년에 반은 세네갈 가서 필드웤하고, 취향도 잘 맞지는 않는 듯. 하지만 연구 성실히 하고 논문 열심히 쓰는 모범적인 박사생이라 만나면 반갑다.
그런데 예전엔 별로 신경을 안 썼는데, 작년 가을에 두어 달 만나면서 이 친구가 "한국식 사고방식으로 퉁쳐서 말하자면" 좀 무례한 타입일 테고, 디테일하게 말하자면 남한테 관심이 정말 없을 뿐 아니라 연구실에서 나한테 자잘한 걸 부탁하면서 별로 고마워하지도 않는다는 판단을 내렸다...
내가 뭐 악감정 품은 건 아니고, 하여간 만나면 인사만 반갑게 하는 사이. 그러다 오늘 연구실 문 관련해서 관련해서 의견이 갈렸다. 나는 연구실 뒷문을 잠구고 한쪽으로만 출입해서, 구석에 조용한 자리를 만들자는 거고, 친구는 프린터에 출력물 찾으러 가기 편하게 그 문을 개방하자는 거다.
그 의견도 틀린 건 아니지만, 하여간 나는 "그건 네 선호일 뿐이고, 나는 연구실에 구석진 자리가 있는 게 좋다. 누가 나 글 쓰는데 뒤로 다니는 거 싫어한다."고 확실히 이해를 시켰다. 전 같으면 얘기하다 말았을 텐데, 어쨌든 내 의견을 끝까지 주장했고, 그녀도 일단 납득했다.
어차피 누가 책장 옮겨서 뒷문 완전히 막지 않는 한, 서로 갑론을박하는 게 큰 의미는 없다. 책장 옮겨서 뒷문 폐쇄하는 것도 나 아니면 딱히 나설 사람 없다... (연구실 문 고장나서 못 잠그다가 아무도 얘기 안 해서 내가 건물 관리팀에 메일 보내고 건물 행정실 쫓아다니고, 연구소 행정직원한테 압력 좀 넣으라고 메일 보내고 해서 다섯 달 만에 고침)
하여간 고집이 있고 말투 센 그녀에게 내가 힘 팍 주고 기 싸움에서 안 밀리고, 나처럼 구석진 자리가 필요한 이용자가 있다는 걸 이해를 시키고, 존중을 받아냈다. 큰일도 아닌데, 남의 나라에서 남의 나라 말로 이 작은 걸 얻으려고 난 존재를 거는 기분;; 아직 어색하지만 킵 고잉. #나는늑대와함께달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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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 9. 30. 03:54 삶의 한때

봄옷 정리할 때 해진 청바지 한 벌과 검은색 면바지 한 벌을 버려서, 가울에 입을 바지가 부족했다. 오후 끝물에, 엠마우스(쓰던 옷이나 생활용품을 기부받아서, 그것을 판 소득으로 집 없는 사람들을 돕는 자선단체)에 갔다. 개강철이어서 그런지, 살림살이나 학용품이 필요한 대학생들도 많고, 계절맞이 옷을 장만하러 온 어른들도 많아서 50평쯤 되는 매장이 꽉 찼다. 치수 맞는 바지 서너 벌을 입어보고, 검은색 골덴 통바지를 하나 데려왔다.

새옷(꼭 새 옷이 아니더라도, 없던 옷이 생기면 내게는 새옷이지)을 집에 들이면, 집에 있는 옷 중에 어울릴 만한 옷이며 신발이며 한번씩 매칭을 해본다. 미리 시뮬레이션을 해두면 그런 분위기가 필요한 상황에 맞춰서 그날그날 바로 입고 나갈 수 있다... 가을/겨울용 와이드팬츠는 처음 소장하는지라, 바지 한 벌로 가능한 코디가 대여섯 가지는 새로 생겼다. 나의 코디력에 뿌듯하고 옷장이 갑자기 그득 찬 것 같다.


최소 일주일 묵은 귀차니즘을 이기고 여름샌들 두 벌 세척했다. 말려서 내일 정리하면, 당분간 옷과 신발 걱정할 일 없네.. 휴~

내가 오늘 장을 무려 두 번 보고 (동네 장터에서 야채, 과일 사고 아시아슈퍼 가서 중국 무랑 두부 사오고) 점심엔 혼자 짬뽕 끓여먹고 깍두기 담그고 저녁엔 되살림 가게도 다녀오고 여름옷과 가을옷도 정리하고 무려 여름샌들까지 세척한 훌륭한 독거 생활인이다. 내가 생각해도 대견하고 기특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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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 9. 15. 20:55 삶의 한때

[간만에 꿈일기] 
오늘 새벽 꿈엔 대여섯 명 되는 남자들이 (알 만한 40대 한국 남자 연기파 배우들 대출동) 죽은 여자 한 명을 부위별로 해체하는 꿈을 꿨다... (해체 장면은 무의식 자체검열로 안 나오고, 앞 장면엔 여자가 있고, 뒷장면엔 붉은 살덩어리들이 있다) 남자들 연기가 코믹하게 처리되어 그리 무섭진 않고 금방 지나감. 여기까지는 전지적 카메라 시점으로 지켜봤던 것 갔다.
해체가 이루어진 다음에 남자들은 사라지고 그 방인지 부엌인지에서 내가 요리를 하다가 생선이나 고기 쌀 때 쓰는 방수지에 남은 그 사체 조각들을 싸서 버리려다가, "엄마 이거 버릴까요?" 하니까 엄마가 버리지 말라고 해서, '왜 버리지 말라고 하지? 그냥 두면 걸릴 텐데...' 약간 찜찜하기도 하고, 그러다 썪으면 어쩌지 걱정도 되고, 엄마가 버리지 말랬으니 못 버리겠고 하다 깼다. 그 죽은 여자는 누구였을까? 그 살조각들을 간직하면 무슨 일이 생길까? 

여성주의적으로 생각하면, 푸른수염에게 살해당한 아내들의 시신이 열쇠로 잠긴 방에서 결국 발견되었듯이, 일군의 남자들에게 살해당한 그 젊은 여자의 뼈와 살들을 버리지 않는 것이 나이 든 여자, 생존한 여자인 엄마가 나에게 주는 지침이 아닐까 싶기도 하고...라고 깨서 1분쯤 생각해 보았다. (어디서 또 읽은 건 있어서...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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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가을에 리옹에 강연하러 온 하워드 베커에게 질의응담 시간에 "당신이 사회과학을 하는 데 있어서 글쓰기의 역할이 뭔가요?" 하고 물어본 적이 있다.
그리고 즉답을 들었는데... 현장에선 베커가 나에게 "음, 아주 big question이군요"라고 말하는 것만 듣고 좋아하고, 답 자체를 꼼꼼히 듣지는 못했다. (80대 할아버지셔서 목소리가 크질 않으심;;) 강연 동영상을 기다렸는데, 석 달 후에 올라왔고 지금껏 모르다가 오늘 아침에 찾았다.
내가 나를 격려하는 차원에서 내 질문에 대한 대답을 다시 찾아 들었다. 답은 그러니까 "내가 뭔가 아는 것 같지만 쓰다 보니까 알게 되는 거지, 정말 아는 게 아니었어요. 글쓰기는 나에겐 참 신비해요"라고 시작한다. 그러고 보면, 나는 쓰면서 생각하질 않고, 생각을 웬만큼 하고 쓰기 시작해서 시간이 항상 모자라다.
물론 미리 생각했다가 쓰면서 생각을 안 하는 건 아니다. 그 과정은 그 과정대로 있는데, 잘 모르니까 미리 생각을 너무 하다가 정작 글을 시작했을 때는 지쳐서 다른 데로 빠지거나, 중요한 얘기는 이미 혼자 다 생각했으니까, 개념 정의 안 하고 디테일로 건너뛴다거나...
암튼 핵심 아이디어만 있는 상태에서 일단 쓰기 시작하는 마음이 조금 더 필요하려나. 내가 뭘 아는지, 내가 뭘 모르는지 다 쓰면서 하나씩 체크하는 거지... 그럼 정반합 사고 과정이 좀더 드러난 글을 쓸 수 있을까, 증명 없이 결론으로 바로 뛰는 글 말고... 아이고, 글쓰기에 대한 성찰 그만하고 다시 그냥 쓰러 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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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 7. 8. 00:36 삶의 한때

아침에 안과 다녀왔다. 선글래스 새로 맞추려고 눈 검사하러 간 건데, 대형안과병원 컨설턴트랑 의사랑 둘 다 뭔가 대충대충이라 기분이 좀 그랬다. 의사는 노안 시작된 거 같다며 평소에도 안경 쓰라고 하고...

논문도 다 안 썼는데 노안이 벌써 왔는가 싶어서 기분이 안 좋은데, 안구건조증에 쓰는 약 받으러 약국 갔더니 처방전이 정식 처방전이 아니라고 해서 (병원장, 주소 등이 없는 백지에 담당의사 이름만;;) 다시 안과 갔더니, 월급 닥터 휴가 간 사이에 잠깐 있는 계약직 의사가 실수를 한 것.

갑자기 이 사람의 진단 결과가 의심스러워 좀 화가 났다. 요새 눈이 많이 피곤한 건 사실이지만, 안구건조증은 오히려 작년 여름보다 덜한데... 작년 여름에 도수검사 받았는데 바쁘다고 선글래스 안 맞추고 일년 지나는 사이 눈이 더 나빠졌나...

생각난 김에 작년 시력검사 결과지랑 오늘 받은 결과를 비교해 보니, 왼쪽 시력이 나빠진 건 그렇다 치고(왼쪽 건조증이 더 심하다) 두 눈동자 사이 간격이 4mm나 차이가 난다(보통 바뀌지 않는다.) 그렇다면 작년이든 올해든 누군가는 실수를 한 것...

월요일에 동네 안경점 가서 작년 결과지랑 오늘 결과지랑 평소에 쓰는 모니터 보호 안경(난시 교정 있음) 셋 다 보여주고 시력 검사 다시 받아와야겠냐고 물어봐야겠다. 나름 전차 갈아타고 강 건너 왔다갔다 하는 것도 짜증이고, 평소에 난시 안경 계속 쓰게 되는 것도 짜증이고... 하지만 논문 생각하면 안경을 쓰기는 써야 하고... 어릴 적부터 난시인 것도 모르고, 늘 피곤하다고 살아온 것도 기분이 나쁘고, 석사논문 쓸 때 결국 안경을 맞췄다가, 거금 200만원 들여서 교정수술 받았는데 또 난시가 있어서 박사논문 쓰는 데 안경 다시 쓰는 것도 기분이 나쁘고... 이렇게 기분 나쁜 시리즈에 빠지면 안 되는데... 사실 지금 모니터 볼 때만 쓰는 안경테 나름 나랑 잘 어울리고, 그 안경 쓰고 책 보면 덜 피곤한 것도 사실이지만, 그 경험 부족하고 무신경한 의사가 "노안 시작할 나이에요" 라고 말한 것 때문에 마음이 상한 거다. 노안인지, 그냥 난시성 피곤인지 잘 생각해 보지도 않고, 당신 나이면 노안이다... 이런 식의 일반화 딱 싫다. 작년에 다른 데가 아파서 병원 갔을 때도 그냥 몸이 안 좋아서 호르몬 기능 이상이 잠깐 생긴 건데, 나이 운운하면서 원인 규명 안 하던 무심한 의사!! 프랑스 의사들 다 짜증난다!!! 흥!!!!


짜증 나는데 짜증 난다고 쓰니까 조금 낫네. 그럼 안경 쓰고 다시 학년말 논문진도 보고서 파일로... 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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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심 먹고 소화시키려고 잠깐 동네 산책하고 동네 카페에서 커피 한 잔 마시고 왔다. 길 건너가 원래 노동자 동네에 대학가가 섞인 동네였는데, 몇 년 사이, 특히 재작년 이후 아이 있는 커플들이 많이 생겨서 (살던 사람들이 애를 낳았는지, 애가 있는 사람들이 이사 왔는지 모르겠으나) 동네에 애들이 많아졌다.

이 동네가 안 비싼 동네일 땐 특히 포르투갈이나 동유럽 혹은 인도, 아시아(베트남, 중국, 한국 등) 쪽 이민자들이 돈 벌어서 처음으로 집 사고 식당하고 그런 동네였는데, 백인 커플들(그 중에도 국제 커플 많다)이 늘면서, 뉴욕풍 혹은 홍대풍 식당카페들도 들어나고, 낡은 이민자 가게들은 문 닫음.

아무튼 길에서 애 안고 다니는 남자들, 아이랑 같이 장 보러 나온 남자들, 유모차 끌고 데이트 나온 부부 등이 늘어났다. 카페에서도 내가 혼자 커피 마시니까 옆자리 커플(젊어 보이는데 애가 셋)의 아이들이 내 테이블 아래서 숨박꼭질. 내가 아이가 귀여워 말 시키니까 아이는 수줍어 도망가고.

사실 프랑스도 주거지랑 상업공간이 많이 구분된 사회라, 주택가나 아파트촌 가면 슈퍼 말곤 상업시설 없다. 배달 피자집이 전부. 부부들이 아이랑 식당이나 카페 잘 안 가고, 애가 네 살이나 넘어야 겨우 식당 진출... 그런데 이 동네처럼 가족 단위 잠깐 외출이 가능한 건 새롭다고 본다(확인 필요).

차랑 자전거, 심지어 버스까지 운행하는 골목인데 아이들이 스카이씽씽 끌고 돌아다니면 안전 문제는 어찌 되나... 뉴욕풍 카페에 노트북 들고 일하러 나온 사람들은 카페에서 애가 갑자기 울면 어떻게 느끼나... 여기서도 노키즈존 얘기가 나올까... 등등 혼자 질문해 보다가... 쓰던 발표문 마무리하러 귀가했는데, 또 이런 글을 쓰고 있네. ㅎㅎ 다 썼으니 발표문 쓰러 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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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 6. 21. 00:50 삶의 한때

합창단에서 나를 예뻐라 하는 마담 미레유(대략 우리 아버지랑 동갑)가 다음 주 학회 발표 준비 뭐 도와줄 거 없냐고 하시더니... 갑자기 스페인의 프레젠테이션 복장을 스페인에서 산 적 있는 아들에게 물어봐서 조사하시고는, 투피스 한 벌, 원피스에 재킷 한 벌, 이렇게 옷 두 세트를 코디해서 가져오셨다.
키랑 어깨 폭이 나랑 대략 비슷하신 데다가 옷 관리를 엄청 잘하셔서, 지금 105세 된 모친이나 본인, 사촌이 입던 옷들도 별로 상한 데 없이, 1~2년 된 옷 같이 깔끔하다. 
나야 발표문 준비하고 여행 관련 예약하고 피피티 만들려면, 옷 고민할 시간 별로 없으니, 그나마 옷장의 낡은 옷이나마 단정한 걸로 한 벌 가져가지 뭐, 그랬는데... 막상 빌려주신 옷을 집에서 입어 보니 음, 확실히 내가 봐도 내 때깔이 다르게 보인다. (물론 평소에도 예쁘고 분위기 있기는 매한가지지만. 😝) 암튼 내 체형에 대한 마담 눈매도 매의 눈인 데다, 코디 감각도 좋으시고, 심지어 본인은 아직 한 번도 안 하신 목걸이까지 과감히 빌려주심. 이 은혜를 어째 갚으리오... 
맘에 안 들면 안 입어도 된다고, 집에 가서 입어보고 정하라고... 하시면서 내가 너한테 뭔가 해줬다고, 뭔가 되갚아야 한다는 생각 절대 하지 말구, 이거 정말 내가 좋아서 하는 일이거든... 하고 되갚음 선물 사전 차단까지... 나를 보면, 새로 전학 온 학급 친구랑 1번으로 친해진 게 완전 흐뭇하고 자랑스러운 소녀같이 기뻐하셔서, (기본 성격이 애정이 많으신 분이고, 자세히는 모르지만 젊어서 힘든 일들을 이겨내시면서 극강 낙관주의자가 되신 듯) 고마우면서도 뭐 또 이런 일도 있나 하고 신기해서 그냥 알 수 없는 웃음만 난다. 흐흐흐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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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 5. 22. 02:09 삶의 한때

오늘의 [모듬솥밥]. 전기밥솥에 불린 쌀 위에 아스파라거스, 쪽파, 당근 등을 작게 썰어 올리고, 그 위에 간 쇠고기에 불고기 양념한 것, 마지막으로 껍질 벗겨 깍뚝 썬 토마토를 올리고 취사 버튼 꾸욱. 취사 끝나고 20분 뜸들여 비볐더니 토마토맛과 불고기맛과 아스파라거스맛이 다 나는 꿀밥 완성. (다 먹어버려서 사진은 없다.)

밑간은 간 쇠고기 100그램에 간장 한 큰술, 요리술 한 큰술, 마늘 한 쪽 다진 것, 다진 생강 약간, 참기름 반 큰술, 후추 약간, 유기농 설탕 1작은술 넣어서 맞췄고, 먹을 때 소금, 후추 뿌려 내 입맛대로 다시 간 맞췄다. 새콤칼칼한 핑크 래디시 물김치 곁들이니 잘 어울렸다.

posted by amieda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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