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천히 살기를 권함'에 해당되는 글 77

  1. 2019.03.09 멜라니한테 얻어 맞은 한방
  2. 2019.03.05 '경이로움' 학생의 메일
  3. 2019.01.07 오늘의 마음가짐
  4. 2018.12.01 침묵과 집중을 배우게 하기
  5. 2018.11.13 찬장 속 모국어
  6. 2018.11.09 이탈리아인 신입생
  7. 2018.11.01 M을 용서하다
  8. 2018.10.30 올인원 PC 구입
2019. 3. 9. 04:18 삶의 한때

오늘 연구소에서 박사생 동기 겸 친구랑 점심 먹으면서 이런저런 얘기를 하는데, 친구가 내 말투 가지고 잠깐 얘기를 했다. 
내 말투라는 게 끝까지 들어보지 않으면 절대 논점을 파악하기 힘들 발화구조인데, 이건 불어가 문제가 아니라, 말하면서 생각을 계속 발전시켜 나가는지라, 나도 내가 정확히 어떤 얘기를 할지 다 생각하고 말하는 건 아니다. 게다가 불어로 생각해서 말하려니 머리는 더 바쁘다. 그러니 미리 내가 무슨 얘기하는지 정확히 포인트를 알려주기가 힘들다.

발화 코드가 정해져 있는 학술 담화나 논문 쓸 때는 당연히 좀더 주의를 해야 하고, 고칠 필요가 있는 습관이니까, 친구가 어떤 어떤 식으로 고쳐 보라고 제안하는 얘기를 덤덤한 얼굴로 들었다. 다른 사람들이 어떻게 생각하는지는 별로 신경쓰지 않지만, 가끔 지도교수와 논문 관련해서 소통할 때 자꾸 갭이 생기는 부분을 해결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친구도 말하기 미안해 하면서도, 내가 덤덤한 얼굴로 들으니까... 내가 외국인 억양도 있는 데다가 말하는 방식도 낯서니, 남들이 안 듣게 되고... 자기가 보다가 열받는 일이 여러 번이었다는 거다. 그래서, 어떻게 하면 그걸 바꿀 수 있을까 혼자 고민을 했나 보다. 말하기 전에 상대가 한 얘기랑 내가 앞으로 하려는 얘기랑 뭔가 연결이 될 거 같다고, 그 말 한마디만이라도 해서 주의를 끌라고 말이다.

프랑스 사람들이 그렇게 하긴 하는데, 사실 나는 들으면 지루하다. 한국인이라 그런지, 내 인지구조 탓인지 모르겠지만, 쓸 데 없는 군말이랄까. 어쨌든 8년 동안 못 배운 걸 보면, 나랑 잘 맞지는 않는 듯. 물론 발표/강의/논문에는 적용하려고 신경을 쓰지만 말이다.

암튼 친구가 얘기를 꺼낸 것도 좋은 의도에서고, 나도 "그래, 너랑 있을 때 조금 더 연습을 해볼께. 너도 도와주렴."이라고 말은 했지만, 사실 마음을 안 다치기는 어렵다. 별로 안 친한 사람한테 그런 얘기를 들어도 소화 시키고 흘려보내는 데 이삼 일 걸리는데, 제일 친한 박사생 동기가 그랬으니... 속이 꽤 많이 상한다.

친구도 집에서 큰딸인지라 보호자 스타일인지도 알겠고, 자기 자신에게도 깐깐한 편인지라, 친한 친구인 내가 남들한테, (자기 생각에는) 있는 실력만큼 인정 못 받는 것도 안타깝겠지. 30대 초반이라 커리어/사회적 인정 문제에 훨씬 더 민감하기도 할 테고... 나도 30대 초반엔 그랬던 것 같다. 그래서 남들이 청하지 않아도 충고도 많이 했다. 그게 또 그 나이 때의 열정이고, 우정인 것 같다.

하지만 나는 친구가 자학할 때 긍정적인 얘기하는 거 빼면, "너는 이게 문제다" 하는 법이 없고, '자기 생긴 대로 감당하고 살겠지. 자기가 정말 필요하다고 느끼면 나중에 고치겠지' 하고 마는 편이다. 그렇게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게 우정이고, 또 애정이라고 믿는다. 때로는 적용하기가 쉽지 않지만 그렇게 하려고 하는데... 이 친구도 그런 줄로만 알았는데... 후... "남들 눈엔 네가 제대로 안 보인다"라는 걸로 나를 고치려 들다니, 뜻밖의 한방이었다. 남들 눈에 어떻게 보이는가 보다는, 내가 나 자신에게 충실하고 그 속에서 나를 발전시켜 가는 게 어쨌든 나에게는 더 중요한데 말이다... 그게 40대의 힘 아니겠나. 아까 그 얘기는 했어야 하는데, 그게 좀 아쉽다. 다음에 그녀가 비슷한 시도를 하면, 그때는 제대로 방어해야지.

친구가 요즘 논문 때문에 예민해져서 완벽주의가 심해져서 주변에 완벽하지 못할 걸 더 못 참는 것 같다. 그래도 내 입장에서는 아프고 속상하고 그렇다. 내 말에 정말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내가 억양이 안 좋든, 말하는 구조가 산만하든, 어쨌든 듣기 마련이고, 나도 그런 사람들을 내 친구라고 생각하는데 말이다. 거기서 약간 에고가 나오면서 화가 나려고 하는데, 여기다가 조금 늘어놓는 걸로 한 시름 놓으려고 한다. 주말에 명상 또 많이 해야지...

써 놓고 보니, 역시 이 글도 나의 구어체 발화구조와 별로 다르지 않구나. 마음 아픈 걸 조금 내려놓으려고 두서 없이 쓴 글이니... 하는 수 없지...


posted by amiedame
2019. 3. 5. 06:17 삶의 한때
강의 3년차 만에 왜 남들은 다 성적 잘 주고 자기만 성적을 제대로 안 줬냐는 메일을 받았다. 시험도 보고, 과제도 다 냈는데 왜 과락을 시켰냐는 거다. 20점 만점에 3.9점이니까 10점을 넘겨야 하는 이수 점수에도 한참 모자란다.

중간고사는 망한 건 자기도 알 테고, 수업태도 성실하지 못했고(수업태도 점수 2점 획득 못함), 쪽지과제는 제대로 냈지만, 기말고사 대신 내라고 한 보고서에는 지정된 텍스트 외에 다른 텍스트를 요약해서 냈기에 제출점수로 10% 점수만 줬다.

그래 놓고, 남들은 다 점수 잘 줬는데, 자기 점수만 왜 이러냐고, 만나서 제대로 알려달라고, 성적 발표 2주 후에 연락이 왔다...? 이 친구 이름이 Merveille, 즉 경이로움인데, 자신감이 참 경이롭다.

"나는 원칙대로 처리했다고, 학생이 과제를 제대로 인지하지 않고 엉뚱한 걸 냈으니 학생 책임일세" 하고 무심하게 답장을 할까 하다가, 그래도 신중하자 싶어 친한 강사-박사생 친구 2명에게 물어봤다.

고교교사 경험 있는 브라질 친구(즉 학생은 학생, 선생은 선생이라는 구분에 좀더 익숙함) 페르난다는 우선 내가 아직 청소년 말기인 남자 학생과 둘이 만나는 건 좀 위험하지 않냐고 걱정을 했다. 자기도 작년에 맡은 강의에서 비슷한 일이 있었는데, TA분반들 상위에 있는 대형강의 책임교수가 그러면 보충시험을 보게 해주라고 해서 그렇게 처리한 적이 있다고 답을 해줬다. 나는 그 학생만 과락 점수를 준 게 아닌데, 그 학생만 문제제기를 했다고 보충시험을 보게 되면, 형평성 문제가 생긴다. 역시 절차 부분에선 학년 책임교수에게 물어보는 게 낫다는 임시 결론. 하여간 나중에 어떻게 처리했는지, 서로 자체 '강사 교육' 차원에서 나중에 다시 공유하기로 했다.

두번째로 물어본, 감정이입 면에서 나보다 좀더 성숙한 프랑스 친구 멜라니는 내 난감함을 이해해 주면서, 다시 나한테 학점 이수를 못한 1학년 학생의 충격과 실망을 이해해 주라면서, 만나서 시험지 보여주면서 하나씩 설명해 주란다. 그러고 나서 학생이 납득 못하면, 역시 학년 주임교수 지도편달 받아서 다른 대안을 제시하는 수밖에...

다른 학교나 다른 과는 어떻게 하는지 모르겠지만, 교육과정에 대해 학기당 2회씩 교수-교직원-학생 연석회의가 열리는 좌파 대학, 좌파 학과의 대응방식은 20여 년 전 한국에서 대학을 나온 내 사고방식과는 차이가 있을 수밖에 없으니, 이런 건 물어보는 수밖에 없다.

나도 아까 메일 받았을 때는 논문 집중 깨지니까 머리도 아프고, 또 그 학생이 워낙 결석도 많이 하고, 공부는 제대로 안 하면서, 학점은 꼭 받아야 한다고 떵떵거리는 스타일이라... 또 이렇게 뻔뻔하게 메일까지 보냈구나, 하고 귀찮은 마음이 먼저 들었지만, 밤에 다시 생각해 보니...

적어도 어느 정도 설명은 들어야, 학년 말에 있는 과락자 부활 시험이라도 제대로 볼 게 아닌가 싶다. 저녁 먹고 나서, 채점기준에 대한 설명 듣고 싶으면, 이번 주 금요일에 만나자고 답장은 했다. 아휴, 학생이 납득하는 선에서 끝나면 좋겠다.

40명 수업(예전에는 25명이었다 한다)이고, 이 인원을 내 성에 찰 정도로 퀄리티 있는 강의를 제공하려면 일주일에 3~4일은 강의 준비며, 채점에 매달릴 텐데 논문 때문에 그럴 수는 없고... 그래도 졸고 떠드는 학생들 얼르고 달래며 이론보다는 읽고 쓰는 방법론 가르치면서 끌고 와서... 기말과제는 대부분의 학생들이 제법 그럴싸 하게 내서, 고생스럽기는 했지만 그래도 끝이 좋으니까 다 좋지 뭐 하고 있었는데... 생각지도 않은 일이었다. 뭐 이런 상황에 어떻게 대처하는지, 이렇게 해서 또 배우는 거지 뭐. 하여간 이렇게 난감한 상황에 같이 고민해 주는 동료-친구들이 있어서 감사한 일이고, 또 학과에 물어볼 체계가 있어서 그것도 감사한 일이다. 에이쿠, 참 어렵다.


posted by amiedame
2019. 1. 7. 17:12 삶의 한때

편집자라는 진로를 결정할 때는, 책을 좋아해서라는 이유도 있지만, 남을 도와주기 좋아해서라는 성격이라는 이유도 있었다. 하지만 근 10년쯤 계속하니 남을 도와주기만 하는 직업은 나한테 남는 게 없는 느낌이 너무 오래 계속되었다. 물론 편집자란 직업 자체가 그렇진 않다. 편집자로서의 전문성도 있고, 분야의 전문성도 있다. 다만 조직 내에서 전통적인 방식으로 자기 전문성을 키우기가 점차 어려워지는 출판노동 조건에서 나도 뭔가 내 것을 갖고 싶다는 마음이 들었다. 이러면 보통 자기 걸 쌓고 싶은 편집자들은 창업을 하는 경우가 많은데, 나는 이런저런 사연이 엮여 박사논문을 준비하게 되었다. 

어학과정 밟고 논문 준비하는 지난 8년간 앞으로 뭐가 될지 고민도 많이 했지만, 아직 분명하지만은 않다. 가능성들을 따라 한발 한발 옮길 뿐이다. 다만 타고난 성격을 바꿀 수는 없는지라, 내 것만 챙기는 건 못할 것 같다. 조금 업그레이드해서, '남이 스스로 잘하도록 도와주는 역할'을 뭔가 하고 싶다. 그래서 내 강의는 내가 가르치는 것보단 내가 학생들에게 "여러분의 본능과 직관을 믿으세요. 틀려도 상관 없어요. 같이 고치면 되니까." 하는 식의 연습문제를 주고, 나중에 결정적으로 틀린 걸 잡아주거나 잘한 걸 칭찬해 준다. 선생 역할의 매니저화랄까... 하여간, 앞으로 계속 이 방향으로 나가려면 내(초자아)가 나(자아)한테 일을 잘하도록 도와주는 경험을 쌓자. 이제는 내가 내 매니저고 선생님이다. (세상 전체가 학교라는 전제에서.)

posted by amiedame
2018. 12. 1. 18:49 삶의 한때

지난 주 수요일 마지막 교시 강의에 학생들이 너무 떠드는데, 진도 나가느라 바빠서 조용히 시키질 못했다. 수업 끝나고, 그 반에서 제일 똘똘하고 프레파 출신인 여학생이, 어쨌든 수업을 집중해서 듣지만 너무 시끄러워서 피곤하다고 애들 좀 조용히 시켜달라고 요청을 했다.


하여, 이번 주 수요일에는 미리 마음을 단단히 먹고... "당신들 지난 주엔 못 참을 지경이었다. 다들 18살 넘은 성인인데 애들도 아니고..." 하고 조용히 엄하게 얘기를 했다. 그리고 미션 두 가지를 동시에 주었다.


첫째는 한 시간 동안, 나눠준 텍스트를 읽고 개요를 써서 수업 끝날 때 내기. 둘째는, 그 한 시간 동안 "침묵과 집중을 익히기"였다. 조용히 하라고 10분마다 내가 큰 소리로 얘기를 하면 1분 조용하다가 다시 떠들던 학생들이, 침묵의 주인이 되는 미션을 주니까 제법 잘 해냈다. 35명 중에 30명쯤 내고 갔다. 나머지 5명은 집에서 완성해서 다음 시간까지 내겠다고 했고...


역시 조용히 하라고 혼내기보다는 미션을 주는 게 요즘 애들에게는 잘 통한다... 미션 완성의 부상은 별다른 건 없고, 1시간 안에 정해진 과제를 다 해서 내면, 전체 성적의 5%를 성실성 점수로 그냥 주겠다고 했다. 과제의 퀄리티와는 상관 없이... 사회학 논문 분석해서 개요 재구성하는 연습과제 3주간 3개 제출하면 총점의 15% 획득. 수업시간에 토론에 활발히 참여하거나 내가 질문했을 때, 대답을 잘했든 못했든 대답이 준비된 사람은 총점의 10% 또 득템. 그렇게 해도, 중간에 본 시험과 기말에 내라고 하는 과제 점수를 내가 짜게 줄 예정이기 때문에 반 평균이 아주 높지는 않을 것이다... 그러나 원래 잘하던 애들만 잘하고, 대학 공부 못 따라가서 포기하는 애들을 어쩔 수 없이 방치하는 것보다는 과목 이수하는 학생도 늘 테고, 어쨌든 시험만 보는 것보다는 텍스트 분석 연습을 했으니... 스스로 배우는 건 조금 더 많지 않을까, 기대를 해본다. 이 실험의 결과는, 학생들 각자, 3주간 개요 재구성해 본 텍스트 3편 중 한 편을 골라, 1000단어로 압축 요약해서 내는 기말과제를 통해 알 수 있다... 잘 되었으면 좋겠다.

posted by amiedame
2018. 11. 13. 06:13 비-모국어의 한때

한밤중에 뜬금 없이 찬장 속 양념병과 식재료 들에 한국어 이름표를 만들어 붙였다. 다 쓴 양념병이나 빈 병의 라벨을 깨끗이 떼고, 벌크로 파는 양념이나 식재료를 사다 쓰는지라 나 아니면 알아보기 힘든 찬장 속이었다.

그러나 나 혼자 쓰는 찬장인데, 아무도 못 알아보면 어떠랴... 한밤중에 갑자기 친구가 준 예쁜 포스트잇을 쓸 데 없나 하다가 생긴 일. 불어로 쓸까 하다가, 누가 본다고 불어로 쓰나 싶어서 한국어로 썼다. 그러고 보니, 한국어 손글씨 쓸 일도 참 드물었다. 하여간 찬장속이 갑자기 귀여워졌다.

흰 바탕에 금색 나뭇잎이 자잘하게 인쇄된 포스트잇에다가 약간 못 쓰는 손글씨로 쓴 "생강", "오향", "소금", "설탕", "밀가루", "보리", "고춧가루" 그리고 "견과류" 등등. 


나중에 누가 집에 놀러오면, 한국어 학습교재로 쓰겠다. 후후

posted by amiedame
2018. 11. 9. 03:21 삶의 한때

지도교수의 지도력이 워낙 출중하시다 보니 받아놓은 전공생들 논문 주제가 말이 다 도시사회학이지 제각각이라, 그동안 교류하기가 쉽지 않았다... 입학해서 줄곧 리옹에서 일상적으로 교류할 수 있는 세부 전공분야가 비슷한 연구자가 없어 (차라리 파리엔 많은데...) 좀 외롭고 힘들었다.


올해 드디어 나처럼 도시중산층의 궤적을 연구하는 신입생이 입학했다. 이탈리아 여성인데, 토리노에서 파리까지 자기가 관심 있는 주제 학회 갔다가 처음 만난 누군가가 리옹의 오티에 교수 추천해 준 김에, 바로 메일 써서 토리노대-리옹대 공동학위 과정으로 입학한 용기와 결단성 있는 젊은이다.


자주 만나서 공부 면에서든, 또 성격이 맞으면 인간적으로든 교류하면 좋겠으나... 나는 이제 논문, 강의, 취미생활, 살림에 바쁜 7년차 박사생이고... 그 친구도 1월에 바로 필드웤 시작해서 바빠지겠지만... 뭐, 동료 연구자만 찾으면 연구가 더 잘 될 것 같은 시절은 지난 것이다...


내가 들고 있는 문헌과 통계, 필드웤 자료들 읽고 종합하기만도 바쁘고... 이제 남이 어떻게 공부하는지 별로 안 궁금하고, 당분간은 (지도교수 빼고는) 남이 내 연구를 어떻게 생각할지 알고 싶지 않다ㅠㅠ 하여간, 그 신입생이 방 구한다는데, 마침 합창단에 방 세 놓는 분이 있어서 두 사람 연결만 해줬다.

posted by amiedame
2018. 11. 1. 04:29 삶의 한때

서머타임에서 윈터타임으로 바뀌는 10월 28일 일요일 새벽에 2009년에 자주 보면 M이 나오는 꿈을 꿨다. 꿈에서 M과 결국 결혼까지 했는데, 늘 미안해하면서 내 돈으로 데이트하는 습관은 그대로이고... 나는 결혼까지 했으니, 어쩌겠나 하고 또 기분이 안 좋은 걸 참았다. 그런데 조금 뒤에 갑자기 카페 테이블 아래에 무슨 구멍을 발견했다. 그 구멍을 가린 휴지 같은 걸 치우니 개미와 지렁이들이 꿈틀거리고, 어머나 이게 뭐야 하고 뒤로 물러서는데, 어린아이 팔 같은 게 그 구멍에서 꿈틀거리며 나온다... 내가 한걸음 더 물러서는데 그 남편이라는 자는 아예 사라지고, 어떤 깡패 같은 남자가 나타나서 내 탓을 하는데, 내가 무슨 농약 스프레이 같은 걸 그 남자한테 뿌리면서 물리쳤다...


M과 헤어질 때 내가 엄청 꿋꿋하고 당당하게, 네가 어디 가서 나 같이 멋진 여자를 만나냐, 안 사귈 거면 헤어지자 하고, 행복을 빌어주고 헤어졌는데... 실은 영혼 한 구석에는 그때 받은 상처가 봉인된 채 썩어들어가는 구멍이 있었나 보다...
지난 토요일에 지역 합창단 축제에 우리 합창단도 참가해서 하루 종일 노래하고, 저녁에 와인 한 잔을 마셨다. 그런데 저녁식사 후에 시작된 콘서트 전반부에서 갑자기 가슴이 막 쿵쾅거리고 아팠다. 이건 또 뭔일인가 했는데, 노래를 하도 많이 해서 심장 어딘가 묻어놓은 마음의 상처자리가 노래 부르면서 단전과 흉곽을 하도 많이 움직인 데다가 요사이 술을 통 안 마시다가 저녁식사가 늦어진 데다가 차가운 도시락이라서 속을 덥히느라고 와인 한 잔을 마셨더니... 2010년 초에 밀봉해 둔 그때 상처가 불쑥 열렸나 보다. 두근거리는 심장은 허리 똑바로 세우고 다시 심장 차크라의 균형을 맞추고 치유하는 호흡을 통해 가라앉히고 무사히 콘서트를 마치고, 밤 12시 넘어서 대절버스를 타고 출발하여 새벽 2시 반에 집에 돌아왔다. 와서 잠옷으로 갈아입고 양치만 하고 바로 잠들었는데, 새벽에 그런 꿈을 꾼 것이다 .
하여간 그렇게 그렇게 꿈에서 깨어나서, 윈터타임으로 시간이 한 시간 늘어난 셈이라 이불속에서 뒤척거리면서, 결국 그렇게 썸만 타고 연애로 이어지지 않아서 참 다행이다... (사실 M이 8개월을 고민하다가 어느 날 밤에 술을 마시고 친구들의 응원을 받아서 한밤중에 만나자고 연락 왔으나 갑작스럽다며 일단 거절했고, 다른 날 볼지 몇 시간 더 고민한 후 거절 메일 보내는 걸로 그 상황은 종료되었다.) 그러니 나는 너를 용서하노라... 또 어찌 보면 그런 마음에 안 드는 상황에 나 자신을 몇 달이나 방치했던 나를 용서하지 못했던 점도 있는데, 그런 나도 용서했다. 다시는 그런 상황에 나를 처하게 하지 말아야지. 이렇게 또 마음 한 구석 깊은 곳에 차 있던 고름을 짜냈다. 

posted by amiedame
2018. 10. 30. 04:16 삶의 한때

어제 2010년형 올인원 PC를 하나 인수했다. 2018년에 쓰기에 별 부족함이 없는 고사양 2010년형 컴퓨터이다. 전 주인이 팔기 전에 초기화를 해주었지만, 오늘 하루 종일 안 쓰는 프로그램 지워서 속도 올리고, 내가 쓰는 프로그램 설치했는데 눈이 하나도 안 건조하다. 안구 건조증 때문에, 청광렌즈 안경 쓰고, 인공눈물 넣고, 눈 운동 하고, 낮잠 자고, 눈에 좋다는 녹황생 음식 챙겨먹고 몇년 간 야단을 부렸는데... 그냥 좋은 모니터 쓰면 되는 거였나?연구소에서 박사생 연구실에 사준 pc와 pc용 모니터도 그리 사양이 떨어지진 않는데, 그동안은 그 차이를 별로 인식을 못했다. 집에서 노트북 모니터 쳐다 보면 오후 서너 시엔 눈이 늘 뻑뻑했는데, 훨씬 덜하다. 잘 샀네. 역시 논문은 집에서 쓰는 걸로~

사실 모니터 하나 따로 사려다가, 올인원 PC가 90유로에 나왔길래 충동구매한 거라... 쓰던 노트북을 어쩔지 특별히 결정은 못했다. 피씨, 노트북, 아이패드를 다 쓸 것 같진 않은데... 노트북은 연말에 통계교육 다시 받을 때 들고가면 되겠고, 아이패드가 계속 필요한지, 아님 미니멀 라이프 위해서 중고 시가에 맞춰 150유로 받고 팔지, 연말쯤 판단해야겠다..

posted by amiedam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