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 8. 29. 23:45 삶의 한때

갑자기 합창단 절친 M (울 아버지와 동갑)때문에 약간 신경이 곤두섬. (참고로 내 신경은 원래 예민하게 타고남)

호흡기 건강이 안 좋은 남친 JP가 컨디션이 안 좋아서 오늘 데이트 약속 깨셨다며 나 보고 남친한테 비밀로 하고, 내가 안부전화 좀 해줄 수 있냐고 문자 보내심...

이런 부탁 받는 것 자체가 싫은데, 그 이유는...

1. 남의 커플 사이에 끼는 상황 싫어함.


2. JP가 아프다는 소식 들었으면, 내가 마음 편안할 때 쾌차하시라고 메일 한 줄 정도는 쓸 수 있는 사이지만, M이 시켜서든 아니든, 내가 직접 안부 전화 걸 정도 사이는 아님. 이것은 JP도 같은 느낌일 듯. 

2-1. M과는 확실히 친하고, 무슈랑도 조금씩 친해지는 중이지만, 아직 그 정도로 친하지 않음.
2-2. M랑 친해도 이런 부탁 받는 거 싫어함. (엄마가 당신 할 말 아버지한테 제대로 못하고, 아버지 고집 피운다고 나한테 일러서, 내가 대신 아버지한테 하게 하는 것도 이제 안 함.)

 

3. JP한테 말하지 말고, 그 전화를 걸라고 했는데, 나는 일단 전화해서 할 말이 없음. 부모님한테 한 달에 한 번 전화하는 것 빼고는 안부전화 하는 성격이 아님. 친구들한테도 잘 안 함. 친구들이 먼저 하면, 대신 대답은 잘 함.


4. 무엇보다 생각하고 글 쓸 시간에 이런 문자 받으면, 맥 끊김...

하여간, 처음에는 이런 종류의 부탁 하지 말아 달라고, 시시콜콜 적어서 M에게 문자나 메일을 보낼까 하다가 (이 정도 수준은 처음이지만, 나한테 맥락은 설명하지 않고 본인 머릿속에 어떤 플랜을 위해서 나한테 갑자기 무슈한테 무슨 무슨 질문 좀 해봐라 하는 건 처음이 아님...), 한번 더 삭히고... "내 생각엔 그냥 혼자 쉬게 두는 게 낫겠다"라고만 답장할 예정. 다음에 또 이런 비슷한 상황이 닥치면, 태도를 분명히 해야지. 요즘 JP가 건강이 안 좋다 보니, M과 이런저런 얘기할 때 부정적인 얘기를 많이 하니까, M 생각에 초-긍정주의자인 나한테 JP에게 좋은 생각 좀 불어넣으라는 건데... 나는 나대로 힘들다. 물론 평소에 M이 나한테 긍정적인 에너지를 많이 보내주니까, 나도 M에게는 같은 에너지를 보내지만, 부정적인 사람 쫓아다니며 기운 넣어줄 정도는 아니다. 그리고 내 생각에, JP도 파트너인 M에게나 속 얘기로 이런저런 불만 얘기하는 거지, 젊은 나한테 대놓고 부정적인 얘기(예: 합창단 생활)한 적 없고, 힘들면 힘든 대로 해 나가시는 어르신이다. 괜히 아는 척 하면서, 수면 아래의 부정성을 건드릴 필요가 없다... 

무엇보다, 지금 내가 신경 쓰는 일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하메 바뀌어서 집에 점검할 거 많지, 다음 주 한국기관 리옹 출장 가이드 준비 마무리도 많지, 일요일에 마감인 학회 발표제안서는 시작도 안 했지, 친구 휴가 끝나기 전에 집에서 오늘 저녁 먹기로 했지... (이건 어제 너무 많이 만든 시금치 커리를 처리하기 위한 나의 지능적 전략이고)... 

 

아이고, 문자 한 통에 확 올라온 짜증을 누르려 삭히고, 이 글까지 쓰느라 또 30분 보냈네... 나는 앞으로 누구랑 연애/동거/결혼을 하든, (내가 할 수 있는 한은) 쉬고 싶다고 하면 쉬게 하고, 혼자 있고 싶다고 하면 혼자 둘 터이다. 나도 같은 대접을 바라기 때문이다.


그래도 이렇게 글로 조금 비우니까 낫다. 다시 하던 일로 고고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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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 8. 19. 05:40 카테고리 없음

벽을 맞댄 옆 건물 같은 층 커플이 아기를 낳았나 보다. 밤마다 갓난아기가 잠깐씩 운다. (물론 낮에도 운다.) 거슬릴 정도는 아니지만, 자다가 한두 번 깬 적도 있다.
아기한테는 조용히 하라고 할 수가 없으니, 내 대안은 나한테 2번 차크라와 접속한다, 외부 자극에 신경쓰지 않는다, 아기가 울지만 나는 거슬리지 않는다... 하고 계속 나한테 얘기하는 거다. 대체로 통하지만, 안 통할 때는 우레탄 귀마개를 낀다.

내가 아는 한, 밤에 우는 아기로 가장 유명한 아기는 나 자신이다. 백일까지 낮밤이 바뀌어서 낮엔 세상 모르고 자고, 밤에는 내려만 놓으면 울었다고 한다. 문제는, 부모님이 그 시절에 시골에서 올라와 서울 보문동 어떤 집에 셋방살이를 하셨는데, 그 집 주인이 어떤 컴플렉스(학력 위조) 때문에 심각한 불면증으로 고생하는 사람인지라, 부모님이 내가 울게 내버려 둘 수가 없었다고 한다. 그래서 어머니, 아버지가 동네 공터에 30분씩 번갈아 안고 나갔다 오셨다고 한다... 내가 10월생인지라, 백일은 일월... 가을과 겨울에 그 고생을 하신 것이다... 아버지는 이 얘기는 별로 안 하시는데, 엄마는 종종 얘기하신다...

그래서 옆집 아기가 울 때, 이 이야기를 떠올리면서... 나 스스로 말하기를... 내가 지금 잠을 못자면, 잠이 필요한 나 자신에게 내가 집중을 못해서이지, 옆집 아기 때문이 아니다. 본인이 불면증에 걸려서 잠을 못 자는 그 집주인이 우리 부모님에게 화풀이를 한 것처럼, 밤새 혼자 신경질을 낼 필요가 없다고 나한테 알려준다. 그리고 밤에 자기 전에, 골반을 바로 잡는 요가를 하고... 마침 그때 옆집 아기가 울면, 계속 요가 호흡에 집중하려고 하면서, 다만 옆집 아기에게 텔레파시를 보낸다. '아가, 이제 잘 시간이다. 잘 자렴.' 다행히 이 아기는 낮밤이 완전히 바뀐 아기가 아닌지 10분 정도면 조용해진다. 아이고, 첫 아이 키우는 그 커플(작년에 밤새도록 바닥이 삐그덕거리는 소음이 계속 되어서, 내가 한번 찾아가서 만난 적이 있는데, 소음은 다른 집에서 내는 걸로 확인되었고, 이 커플의 여자 쪽에서 내 얘기를 차분하고 진지하게 들어줘서, 내가 한껏 예민해진 신경을 가라앉힐 수 있었다.) 고생 많겠다, 애기 잘 키우세요, 하고 또 텔레파시로 덕담을 보내준다. 그렇게 마음을 편히 먹은 덕분에, 대략 하루 일곱 시간 남짓 잘 자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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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 7. 19. 05:04 삶의 한때

참, 이번 주로 3월 초에 다친 무릎 재활 물리치료가 끝났다. 6월에 찍은 MRI에 따르면 2001년에 스키사고로 다친 무릎 인대는 부분 파열이 일어난 채로 허술하게 아물었다. 또 오른쪽 무릎 인대가 안 좋아서 오른쪽 고관절이 안 좋아지는 요소가 존재한다고 한다. 
의사나 물리치료사나, 이제 와서 인대에 대해 뭐 따로 할 수 있는 일은 없다고 한다. 노년을 대비하여, 무릎 근육을 강화하는 수밖에 없단다. 
물리치료사가 발목과 무릎을 강화하려면 천천히 달리기를 하라고 한다. 평생에 걸쳐 달리기를 좋아한 적은 없지만... 별 수가 없으니.. 선선한 날에 공원에 가면 100미터씩 세 번쯤 달리고 나머지는 걷는다. 수영장 가서도 등근육 풀러고 살살 미역만 감는 느낌의 수영이었는데, 오월부터는 무릎에 조금 더 힘을 더해서 운동을 하는 느낌이 들도록 세 바퀴쯤 돈다. 
이번에 무릎을 살짝 다친 바람에, 예전에 다친 무릎 상태가 어떤지 정확히 알고, 어떻게 돌보면서 살아야 할지 알았으니 다행이지, 뭐냐. 조금씩 나아지겠지 하고 믿고 살기로 했다. 이가 없으면 잇몸, 인대가 약하면 근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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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 5. 27. 21:37 삶의 한때

봉준호 감독이 신작 영화 <기생충>으로 2019년 칸 국제영화제 황금종려상을 받았다. 일단 상을 받자, 한국의 언론이나 문화계 인사들이 봉준호 감독이 소설가 손자, 그래픽 디자이너 아들, 영문학자 동생 등으로 엄친아/천재로 형상화되는 유전자주의를 환기하는 얘기들을 많이 한다. 나는 그보다는 그가 넷플릭스가 제작, 배급한 영화 <옥자> 연출 경험을 통해 어떤 글로벌 감각을 얻었고, 그것이 다시 한국 출신의 글로벌 영화제작사인 CJ 스태프들과 어떤 협력관계를 구축해서 <기생충> 제작과 연출에 다시 투입되었을지, 달리 말해, 봉준호라는 영화감독의 글로벌 문화자본, 사회자본 활용을 사회학적으로 어떻게 재현해서 분석할 수 있을지, 그런 게 궁금하다. 출판사 다닐 때도 편집자 병이 있었지만, 사회학자로서 사회적/지리적 모빌리티와 문화자본 사이의 동학을 질문하는 논문 틀을 준비하다 보니, 거의 저절로 품게 되는 질문이다. 

구조와 제도에 관심을 가져야 하는 사회학자로서 나는, 봉테일 씨가 90년대 초반 연대 사회학과와 90년대 후반 한국 영화아카데미에선 뭘 배웠고, 그의 가치들이 한국 사회를 어떻게 재현하고, 또 편집해 왔는가 하는 영상 커뮤니케이션 학자들이 던질 법한 질문 이상으로, 그게 감독 개인의 역량 확장일 뿐 아니라, 한국 사회구조 안에서, 또 영화산업 구조 안에서 한 영화감독이 어떻게 성장하고 진화할 수 있었는지, 그리고 그 성공을 바탕으로 글로벌 온라인 영화 <옥자>를 연출하면서 다국적 배우/스탭/제작자들과 함께 글로벌 대중을 대상으로 이미지와 감정을 소통하는 방법으로서의 문화자본, 사회자본을 획득하면서 또한 자신이 쌓아온 한국적 컨텐츠들을 글로벌 컨텐츠로 변환시키는 전략들을 세우게 되었는지, 이런 질문들에 대한 답을 들으면 상당히 재밌을 것 같다. (물론 이러한 내가 이런 내용들을 다 알아야 할 필요는 없다. 특히나 올해는 내 전공을 충실히 공부해서, 논문을 마치기로 결심했기에 더 그렇다.)

그와 별개로, 봉준호 감독이 선보이는 꼼꼼하면서도 강력한 이미지들의 변태스러움을 대단하다 생각하지만, 사실 개인적으로 많이 좋아하지는 않는다... 시각적으로 너무 강한 이미지들은 나를 심란하게 만들어서, 자주 가까이 하고 싶지는 않다. 꼭 그런 이미지들을 영화로 찾아서 안 봐도 내 꿈에 자주, 생생하게 나온다. 독특한 이야기들을 이미지보다 텍스트와 구술로 접하는 게 내 내면의 평화을 지키는 데는 좋다. <살인의 추억>과 <괴물> 이후 봉준호 영화를 찾지 않은 이유가 그것인데, 그래도 <기생충>은 이례적으로 한 번 보러 갈 것 같다. 다음 주에 개봉한다니까, 하루 이틀쯤 심란해도 괜찮겠지 뭐.

영화 <기생충>의 황금종려상 수상에는 한->영 번역을 한국에 오래 산 미국인 영화평론가 달시 파켓 씨가 했다는 사실도 한몫 한 듯싶다. 한국 문화도 잘 알고, 한국어의 뉘앙스를 섬세하게 살려 영어 의역을 했다고 한다. (관련기사) 황금종려상 수상소식에 우리 합창단 분들도 영화 보러 가겠다고 나한테 한마디씩 하던데, 불어 번역은 누가, 어떻게 하려나? 영어 대본을 불어로 옮길까? 한국어 대본을 불어로 바꾸려나? 하는 호기심도 생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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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 5. 23. 20:09 삶의 한때

3월초에 호신술 수업 중에 무릎을 살짝 다쳐서, 그 이후로 물리치료를 받고 있다. 18년 전에 다친 발목이며, 16년 전에 다친 후로 계속 취약하던 발목이며 무릎이며 강화훈련도 하고, 책상물림 때문에 고질적으로 뭉친 엉덩이 근육을 풀어주는 스트레칭도 집에서 짬날 때마다 하면서 꽤 좋아졌다. 
하지만, 2001년 스키 사고 이후, 힘이 많이 들어가는 동작을 지탱하지 못하는 오른쪽 무릎의 상태는 여전히 모른다. 왼발을 들고, 오른발로만 선 채 무릎을 구부리면 지탱을 못해서, 무릎이 앞으로 내려가질 않고 몸이 오른쪽으로 기울어진다. 통증을 피하기 위해, 뇌가 만들어낸 꼼수인데 그 오랜 세월 모르고 산 것이다. 
3월 중순에 찍은 X선 사진으로 봐서 뼈에는 문제가 없지만, 무릎 인대 부근에 작은 물주머니는 사라지지 않아 의사가 MRI를 찍어보자고 했다. 리옹에 MRI 장비를 갖춘 데가 많지 않아서, 의료영상센터 몇 군데에 전화를 해보았다. 처음 전화를 한 두어 군데는 전화를 안 받아 실패, 온라인으로 3월에 X레이 찍은 센터(방사선 기사가 불친절해서 다시 가고 싶지 않았다)에 예약을 잡은 후, 다시 전화를 걸어 사실 방사선 촬영이 아니라 MRI 예약으로 바꿔달라고 했더니, 자기네는 MRI가 없다고 한다... 다시 전화와 인터넷으로 빙빙 돌자니 스트레스를 받아서, 오늘 아침에 집 근처 종합병원에 직접 가서 예약을 잡았다. 6월 24일로 예약이 잡혔다. 
상태는 정확히 모르지만, 아무튼 물리치료는 받고 있으니까 낫고 있기는 할 것이다... 달리 수가 없으니까, 의사와 물리치료사가 하라는 대로, 18년 전에 다친 무릎과 발목 강화운동을 하고 있다만, 이 느리고 비효율적인 병원 분업체계를 견디면서 사는 프랑스인들의 이 멘털리티는 아직도 이해는 안 된다... 그걸 내가 이해할 의무는 없지만 말이다. 뭐, 그냥 그렇다는 말이다. 
아무튼 나는 낫고 있는 것이다. 발목과 무릎을 강화하면, 아마 인생의 태도도 좀더 꼿꼿해지지 않을까... 뭐 그런 정신력 강화 효과에 대한 기대도 품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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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 3. 29. 21:13 삶의 한때

우리 합창단 총무부장(50대 후반 여자분, 프랑스 우체국 직원)이 합창단 일처리 두루두루 깔끔하게 잘 하고, 목소리도 좋고, 나한테도 엄청 친절하고, 내가 예쁜 옷이나 악세사리 걸치고 가면 항상 칭찬해 주고... 공평하고 좋은 사람이고자 하는 천칭자리인데, 단점이 나를 가끔 애 취급하면서 내 취향들을 뭉개 버린다. 아니 내가 합창단에서 명랑하게 지내고, 두번째로 젊은 합창단원이고, 가입한 지 이제 2년차이고, 본인보다 15년 정도 어리다고 해도, 엄연히 마흔 넘은 어른인데... 이건 뭐 텃세도 아니고... "넌 외국인이고 합창단에 들어온 지 얼마 안 되니 잘 모르겠지" 하는 '프랑스 플레이닝'의 연속 시전. 나쁜 사람은 아니지만, 친해질 수는 없는 사람이다. 

예를 들어, 합창단 공연 쉬는 시간에 케이크 판매를 하는데, 작년에 내가 '요즘엔 채식자들도 많으니 나는 비건 케이크를 굽겠다.' 라고 하니까 "관둬, 쓸데 없이 그런 걸 뭐하러 하니."라고 했던 일이 있다. 케이크는 일단 버터와 설탕 들어가야 맛있다는 대중적 취향의 보유자인가 보다 하고 한번 넘어갔다. 나는 내가 구워 가고 싶은 대로, 한식과 양식을 접합시킨 LA식 찹쌀 타르트를 구워갔다. 나한테 대놓고 말은 안 했지만 이후에 다른 케이크 얘기할 때 보면, 대략 불만족... 그냥 평범한 거(프랑스식) 해오라는 얘기다. 하지만 프랑스 사람도 아닌 내가 프랑스식 음식을 준비해 갈 이유가 어디 있겠는가. 나는 녹두전도 부치고, 김밥이나 주먹밥도 싸고, 내 속에 편하고, 또 마늘과 양파를 먹지 않는 친한 합창단원도 먹을 수 있는 음식을 계속 만들어 갔다. 
며칠 전에는 내일 합창단 공연 끝나고 이어지는 뒷풀이에, 합창단 공금으론 말린 소시지와 치즈, 빵 등을 내놓을 테니... 각자 그 밖에 먹을 만한 음식들을 조금씩 싸오라고 공지를 했다. 같이 공연하는 관현악단 사람들도 같이 먹고, 구순 넘으신 명예 지휘자와 지금 합창단을 이끄는 지휘자 생일도 이맘 때이니 조금 거하게 뒷풀이를 할 예정이다. 야채를 좋아하는 나는 그럼 샐러드를 가져가겠다고 하니까, 자세히 들어보지도 않고 그런 건 됐어, 이런 식이다. 옆에 다른 사람이 "샐러드는 포크 필요해서 준비하기 복잡해." 하고 설명은 해줘서 납득하고 넘어갔지만, 이 총무부장의 태도에는 본인의 책임감과 열정이 앞선 나머지 다른 사람들의 의견을 조율하는 감각을 살짝 잊어버린 감이 있다. 이분이 워낙 열심히 하고 또 잘하니까 합창단 다른 분들도 웬만한 건 맡기는 게 편하니까 다른 추가 의견을 잘 안 내는 편이기도 하다. 이러다 보니, 내 생각에 이 냥반은 합창단을 위한다는 생각과 본인 생각의 구분이 좀 흐려진 것 같다. 

그런데 이런 것들보다 더 심각한 건, 연습시간에 자꾸 내 집중을 깨는 문제다. 나는 지휘자 지도 받으면서 다 같이 목 풀 때, 내 목소리와 접속하느라고 몸을 많이 움직이는 편이다. 1월 말에 다른 합창단이랑 합동공연할 때 "혹시 네가 허락한다면, 네가 공연할 때 움직이지 않다록 신호를 줘도 되겠니?" 하고 물어보길래, 한번 허용을 했다. 그런데 그 공연에서 특정 노래가 좀 어렵고, 공연 전에 연습량도 부족해서 다들 같이 틀리는 상황이 벌어졌다. 내가 혼자라도 다시 박자를 잡느라고 무릎을 까딱까딱 하는데 움직이지 말라고 내 팔을 잡았다. 미리 그래도 된다고 하기는 했지만, 막상 그 상황을 겪어보니 내가 집중이 깨져서 그 다음에 노래를 따라가기가 힘들었다. 

그래서, 이런 개입을 하지 말라고 해야지 생각을 하는데, 공연 앞두고 연습 강도가 높아서 연습날 진지하게 따로 얘기할 짬은 없고, 이 양반은 아예 내 습관을 고치려고 결심을 했는지, 잔소리 습관을 들여서 연습 중간에 계속 지적을 한다. 연습시간에 감정이 상한 채 얘기하면 나도 상당히 까칠하게 말할 수 있는 사람이니까, 그 상황을 피해 보려고, 옆자리에 앉지 않고 자리를 바꿔보기도 하고, 하는데 꼭 내 옆자리를 골라 앉았다. 이 냥반이 요즘 30년 같이 산 남편과 협의이혼 수속 중인 데다가 실업자 남동생이 몇 달째 집에 와서 구직도 안 하고 히키코모리 생활을 해서 속상하던 참이라는 말도 들어서, 웬만하면 넘어가고 싶은 마음도 있었다.  

사실 내가 첫째 줄에선 가장 안정적으로 노래를 하니까 내 옆에 앉는 걸 선호하는 게다. 그러면서 본인이 틀릴 때마다 '아 이번에 나 틀렸지?' 하면서 연습시간 중간에 계속 물어본다... 난 지휘 따라가면서 내 노래하기도 바쁜데 계속 이런 질문을 들으면 나도 참 할 말이 없다. 나는 타고난 목소리가 커서, 혼자 노래를 하면 편할 텐데, 합창단에서 노래를 하려니, 내 목소리만 너무 튀지 않도록 신경 쓰면서 제대로 노래하려니 마음이 혼자서도 이미 바쁘다 말이다. 그런데 이 양반은 자기 틀릴까 봐 걱정하면서 그 사이에 내 동작 관찰해서 잔소리를 한다. 
나를 관찰하고 잔소리할 에너지를 본인 내면으로 돌리면, 나를 따라하지 않아도 본인 스스로 음정, 박자를 잘 잡을 수 있을 텐데... 그런 불만을 키워가면서 두 달여가 지났다. 이번 주에도 어김 없이 옆자리, 어김없이 또 한마디. "여긴 집회가 아니야." 작년 가을 마크롱 반대 집회에서 우연히 만났을 땐 그리 반가워하더니, 그 좋은 기억까지 잔소리에 써먹나...? 매번 무안하고 당황스러웠다.

이번 주 연습이 끝나고 집에 와서도 계속 생각이 나고, 계속 이러면 내가 연습시간에 행복할 수가 없구나, 그러면 논문 쓰는 데도 방해가 된다, 선을 긋는 게 필요하겠구나 싶어서 드디어 메일을 썼다. 내가 연습시간에 몸을 움직이는 거 얘기 그만하라고 썼다. 주로 움직이는 건 나하고 접속해서 노래에 맞춘 감정을 잡거나, 어떻게 소리를 보내고 울릴지 감을 잡기 위해서 꼭 필요한 작업이다 하고 우선 설명을 했다.
그리고 내가 공연 때 움직일까 봐 걱정하는 건 당신이지, 난 아니다. 난 내가 뭘 노래해야 할지도 알고, 내 목소리가 어디까지 올라갈지, 어떻게 써야 하는지 정확하게 안다, 나는 똑똑하고 용감한 여성이고, 이 행성 위에서 수십 년간 내 나름의 경험을 쌓은 사람이다, 나는 나를 충분히 통제할 수 있다고 썼다. 
그리고 합창 공연에 노래 들으러 왔으면, 합창단 전체의 화음을 듣고, 좋은 소리를 내려고 하는 단원들의 열정을 봐야지, 일개 합창단원이 몸 조금 더 움직였다고 그걸 부정적으로 보는 사람이 있다면, 그런 사람은 공연을 보러 올 자격이 안 된다고 썼다. 

처음에는 살짝 삐진 듯, 그럼 네 옆에 앉지 않겠다고 건조하게 한줄짜리 답장을 했다. 답장 온 건 알았지만, 내가 논문에 집중하려고 읽지 않고 답장을 안 니까, 몇 시간 후에 다시 메일이 왔다. 내가 집중하는 데 그런 동작이 필요하다면 연습시간에는 신경을 안 쓰겠다고, 공연에서만 안 하면 된다고... (내 마음 불편하게 해서 미안하다는 말은 끝까지 안 썼다. 역시 나와 친해기지는 힘든 사람이다. 진짜 사려 깊은 사람이거나 나에게 개인적인 관심이 있었다면, 합창단에 대한 열정이 앞서서 그랬다고, 내 기분 어쩔지 생각하지 못해서 미안하다고 썼겠지...) 

어쨌든 더 이상 잔소리 안 하겠다고 했으니, 나도 그 사이에 마음이 조금 가벼워져서, 이해해 줘서 무척 고맙다, 공연 때는 안 할 테니 걱정 말아라. 당신은 섬세한 사람이 있으니 내가 얘기하면 들어줄 거라고 믿고 메일을 쓴 거다... 하고 내 나름대로는 외교적 뒷마무리. 

합창단은 내가 논문 바깥에서 잠깐씩 행복하게 지내러 가는 곳인데, 여기서 프랑스 플레인인지, 텃세인지 내 선을 자꾸 건드리니... 결국 내가 어떤 사람인지, 내가 어떤 성깔이 있는 사람인지 또 보여주는 수밖에 없다. 그리하여 내일 공연 판매용 케이크는 달걀은 들어가지만, 버터와 밀가루 없이 가볍고 담백한 케이크, 뒤풀이용 음식으론 채소스틱과 채식 치즈맛 디핑소스를 만들어 가기로 결심했다. 

논문을 통해 내가 무엇에 관심을 갖고 질문하고, 무엇에 가치를 두는지 설명해야 하는데, 불어로 나를 그렇게 표현하는 게 쉽지만은 않다. 불어만의 문제가 아니고, 압도적인 사회학의 연구전통 앞에서 외국인이고 여성이라는, 그들이 나에게 씌우는 재현에 갖히지 않고, 한국사회에 프랑스적인 연구질문을 가져와서 적용을 시키든, 혹은 프랑스 도시사회학 안에 서울이라는 새로운 필드를 꺾꽂이해서 뿌리 내리게 하든... 모두 나라는 개인이 튼튼하지 않으면 해낼 수 없는 도전이다. 그리하여 일상에서도 나를 더 적극적으로 드러내고 프랑스 사람들이 나를 더 존중하도록 에너지를 쓴다. 이 새로운 실천들이 좋은 습관이 되어 글쓰기할 때도 자연스러운 자신감으로 나타나기를 소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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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 3. 24. 00:39 삶의 한때
오늘은 장터에서 정어리를 샀다. 정어리가 살이 오르는 철이다. 김치에 지져 먹을까 했는데, 야채장수가 납작 파슬리를 공짜로 듬뿍 주는 바람에 파슬리를 쓰려고... 담백하게 지리로 끓였다. 무와 다시마를 넣고 끓이던 육수에 정어리와 쪽파, 생강, 마늘, 소금을 넣어 익혔다. 불을 끄고 미나리 대신 파슬리를 올려 잠깐 뚜껑을 덮었다가 밥과 김치에 곁들여 먹었다. 담백하고 순하고 싱싱한 맛이었다.

생선장수에게 정어리 500그램 달라고 했는데, 생선장수가 (1유로어치라도 더 팔려고 그랬는지) 650그램을 담아 놓고 쬐금~ 넘어갔다고 우겼다. 도로 덜어내라고 할까 하다가, 들고 있는 짐, 즉 먼저 산 과일과 야채가 무거워 말 길게 하기 귀찮아서 그냥 담아준 채로 받아왔다. 집에 와서 봉지를 열어보니 여남은 마리다.
손으로 문질러 비닐을 벗겨내고 찬물에 한 마리씩 헹궈, 여덟 마리는 정어리 지리를 끓이고, 다섯 마리는 굵은 소금을 넉넉히 뿌려 냉장고에 넣어 두었다. 정어리에 간이 들고, 밤에 기온이 떨어지면 창 밖에 내놓아 조금 꾸덕하게 말려서 얼릴까 싶다. 한 마리씩 구워서 밥 반찬으로 먹어야지. 매일 먹지는 않을 테니, 다 먹으려면 보름 넘게 걸리겠다.

정어리 조림 대신 (들어본 적도 없는) 정어리 지리를 만드는 일. 살아온 문화의 습관에서 벗어나는 일, 몸에 익혀온 입맛을 바꾸는 일을 할 때마다 마음에 작은 저항이 이는데, 새로운 도전을 하는 쪽으로 잘 넘어가곤 한다. 그러나 내가 어떤 사람인지 조금 헷갈릴 때는 한국에서 먹던 음식이나 부르던 노래들을 다시 찾는다. 여전히 좋은 것도 있고, 이제는 맞지 않는 것도 있다. 그렇게 내가 어떤 사람으로 남았는지/변했는지 가끔 확인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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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 3. 12. 06:23 삶의 한때

지난 주에 호신술 수업에서 무릎을 약간 다쳐서 오늘 스포츠의학과에 다녀왔다. 친절하고 젊은 의사가 무릎 부상은 경미한 정도라 2주 정도면 아물 것 같다고 한다. 그 사이에 호신술은 가지 말고, 자전거는 기어 풀어놓고 타고, 수영이나 살살 하면 된다고 한다. 

그런데 의사가 여기저기 검사를 하다가 골반과 엉덩이 근육 뭉친 게 더 심하다며, 나한테 등이 아프지 않냐고 물어봤다. 내가 다리가 좀 짧은데, 책상 높이에 맞춰서 의자 높이를 조정했더니 다리가 바닥에 제대로 안 닿아서 의자에 좀 불안정하게 앉는 습관이 있는데, 이게 골반과 이상근에 참 안 좋았나 보다. 치료는 골반이 받아야겠다고, 물리치료 받으면서 천천히 해결해 보자고 한다.

무릎 상태도 보면, 이번에 다친 건 큰일이 아닌데, 18년 전에 스키 사고로 다친 후유증이 더 심하고, 6년 전에 심하게 접지른 발목도 당시에 프랑스 의료보험 가입할 줄 몰라서, 집에서 수지침과 족욕으로 자가치료하고 한 달 동안 집밖에 안 나갔다가 한국 갈 때마다 침만 맞았는데 완치는 안 되고 발목이 종종 뻐근하다. 7년 전에 다친 데가 아직도 종종 염증이 생기는 걸 보면 발목 안쪽 연골이 상해서, 안쪽 복숭아뼈 근육을 쓰니까 그쪽이 뻐근한 염증이 자꾸 생기는 것 같단다. 노년에 (정확히 무슨 단어인지는 못 알아들었지만) 발목 못 쓰는 일이 남들보다 빨리 시작될지도 모르겠지만, 할 수 있는 치료를 해보자고. 완치는 못해도 그 현상이 오는 걸 조금 늦출 수만 있다고 한다. 일단 엑스레이 찍어보자고 했다.


아 내가 이런 것들을 혼자 끌어앉고 이국만리에 살고 있구나, 그래서 그렇게 쉽게 피곤해졌구나 하는 제대로 된 이해와 함께 이제라도 프랑스 사회보장제도 혜택 받아 살살 치료하면, 논문 쓰는 동안 조금 덜 아프겠네.... 하는 생각을 할 수 있어서 다행이다 싶으면서도, 내가 생각해도 내가 좀 짠하다. 아무튼 차분하고 설명 잘하는 의사 만나니까 안심이 되긴 한다.


다들 아프지 마시고, 작은 아픔이라고 무시하지 마시고, 오래된 병도 완치는 못해도 치료하면 조금이라도 건강하게 생활할 수 있습니다. 작은 증상도 짬짬히 확인하며 고치고 살아요. :-)


posted by amiedam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