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합창단 총무부장(50대 후반 여자분, 프랑스 우체국 직원)이 합창단 일처리 두루두루 깔끔하게 잘 하고, 목소리도 좋고, 나한테도 엄청 친절하고, 내가 예쁜 옷이나 악세사리 걸치고 가면 항상 칭찬해 주고... 공평하고 좋은 사람이고자 하는 천칭자리인데, 단점이 나를 가끔 애 취급하면서 내 취향들을 뭉개 버린다. 아니 내가 합창단에서 명랑하게 지내고, 두번째로 젊은 합창단원이고, 가입한 지 이제 2년차이고, 본인보다 15년 정도 어리다고 해도, 엄연히 마흔 넘은 어른인데... 이건 뭐 텃세도 아니고... "넌 외국인이고 합창단에 들어온 지 얼마 안 되니 잘 모르겠지" 하는 '프랑스 플레이닝'의 연속 시전. 나쁜 사람은 아니지만, 친해질 수는 없는 사람이다.
예를 들어, 합창단 공연 쉬는 시간에 케이크 판매를 하는데, 작년에 내가 '요즘엔 채식자들도 많으니 나는 비건 케이크를 굽겠다.' 라고 하니까 "관둬, 쓸데 없이 그런 걸 뭐하러 하니."라고 했던 일이 있다. 케이크는 일단 버터와 설탕 들어가야 맛있다는 대중적 취향의 보유자인가 보다 하고 한번 넘어갔다. 나는 내가 구워 가고 싶은 대로, 한식과 양식을 접합시킨 LA식 찹쌀 타르트를 구워갔다. 나한테 대놓고 말은 안 했지만 이후에 다른 케이크 얘기할 때 보면, 대략 불만족... 그냥 평범한 거(프랑스식) 해오라는 얘기다. 하지만 프랑스 사람도 아닌 내가 프랑스식 음식을 준비해 갈 이유가 어디 있겠는가. 나는 녹두전도 부치고, 김밥이나 주먹밥도 싸고, 내 속에 편하고, 또 마늘과 양파를 먹지 않는 친한 합창단원도 먹을 수 있는 음식을 계속 만들어 갔다.
며칠 전에는 내일 합창단 공연 끝나고 이어지는 뒷풀이에, 합창단 공금으론 말린 소시지와 치즈, 빵 등을 내놓을 테니... 각자 그 밖에 먹을 만한 음식들을 조금씩 싸오라고 공지를 했다. 같이 공연하는 관현악단 사람들도 같이 먹고, 구순 넘으신 명예 지휘자와 지금 합창단을 이끄는 지휘자 생일도 이맘 때이니 조금 거하게 뒷풀이를 할 예정이다. 야채를 좋아하는 나는 그럼 샐러드를 가져가겠다고 하니까, 자세히 들어보지도 않고 그런 건 됐어, 이런 식이다. 옆에 다른 사람이 "샐러드는 포크 필요해서 준비하기 복잡해." 하고 설명은 해줘서 납득하고 넘어갔지만, 이 총무부장의 태도에는 본인의 책임감과 열정이 앞선 나머지 다른 사람들의 의견을 조율하는 감각을 살짝 잊어버린 감이 있다. 이분이 워낙 열심히 하고 또 잘하니까 합창단 다른 분들도 웬만한 건 맡기는 게 편하니까 다른 추가 의견을 잘 안 내는 편이기도 하다. 이러다 보니, 내 생각에 이 냥반은 합창단을 위한다는 생각과 본인 생각의 구분이 좀 흐려진 것 같다.
그런데 이런 것들보다 더 심각한 건, 연습시간에 자꾸 내 집중을 깨는 문제다. 나는 지휘자 지도 받으면서 다 같이 목 풀 때, 내 목소리와 접속하느라고 몸을 많이 움직이는 편이다. 1월 말에 다른 합창단이랑 합동공연할 때 "혹시 네가 허락한다면, 네가 공연할 때 움직이지 않다록 신호를 줘도 되겠니?" 하고 물어보길래, 한번 허용을 했다. 그런데 그 공연에서 특정 노래가 좀 어렵고, 공연 전에 연습량도 부족해서 다들 같이 틀리는 상황이 벌어졌다. 내가 혼자라도 다시 박자를 잡느라고 무릎을 까딱까딱 하는데 움직이지 말라고 내 팔을 잡았다. 미리 그래도 된다고 하기는 했지만, 막상 그 상황을 겪어보니 내가 집중이 깨져서 그 다음에 노래를 따라가기가 힘들었다.
그래서, 이런 개입을 하지 말라고 해야지 생각을 하는데, 공연 앞두고 연습 강도가 높아서 연습날 진지하게 따로 얘기할 짬은 없고, 이 양반은 아예 내 습관을 고치려고 결심을 했는지, 잔소리 습관을 들여서 연습 중간에 계속 지적을 한다. 연습시간에 감정이 상한 채 얘기하면 나도 상당히 까칠하게 말할 수 있는 사람이니까, 그 상황을 피해 보려고, 옆자리에 앉지 않고 자리를 바꿔보기도 하고, 하는데 꼭 내 옆자리를 골라 앉았다. 이 냥반이 요즘 30년 같이 산 남편과 협의이혼 수속 중인 데다가 실업자 남동생이 몇 달째 집에 와서 구직도 안 하고 히키코모리 생활을 해서 속상하던 참이라는 말도 들어서, 웬만하면 넘어가고 싶은 마음도 있었다.
사실 내가 첫째 줄에선 가장 안정적으로 노래를 하니까 내 옆에 앉는 걸 선호하는 게다. 그러면서 본인이 틀릴 때마다 '아 이번에 나 틀렸지?' 하면서 연습시간 중간에 계속 물어본다... 난 지휘 따라가면서 내 노래하기도 바쁜데 계속 이런 질문을 들으면 나도 참 할 말이 없다. 나는 타고난 목소리가 커서, 혼자 노래를 하면 편할 텐데, 합창단에서 노래를 하려니, 내 목소리만 너무 튀지 않도록 신경 쓰면서 제대로 노래하려니 마음이 혼자서도 이미 바쁘다 말이다. 그런데 이 양반은 자기 틀릴까 봐 걱정하면서 그 사이에 내 동작 관찰해서 잔소리를 한다.
나를 관찰하고 잔소리할 에너지를 본인 내면으로 돌리면, 나를 따라하지 않아도 본인 스스로 음정, 박자를 잘 잡을 수 있을 텐데... 그런 불만을 키워가면서 두 달여가 지났다. 이번 주에도 어김 없이 옆자리, 어김없이 또 한마디. "여긴 집회가 아니야." 작년 가을 마크롱 반대 집회에서 우연히 만났을 땐 그리 반가워하더니, 그 좋은 기억까지 잔소리에 써먹나...? 매번 무안하고 당황스러웠다.
이번 주 연습이 끝나고 집에 와서도 계속 생각이 나고, 계속 이러면 내가 연습시간에 행복할 수가 없구나, 그러면 논문 쓰는 데도 방해가 된다, 선을 긋는 게 필요하겠구나 싶어서 드디어 메일을 썼다. 내가 연습시간에 몸을 움직이는 거 얘기 그만하라고 썼다. 주로 움직이는 건 나하고 접속해서 노래에 맞춘 감정을 잡거나, 어떻게 소리를 보내고 울릴지 감을 잡기 위해서 꼭 필요한 작업이다 하고 우선 설명을 했다.
그리고 내가 공연 때 움직일까 봐 걱정하는 건 당신이지, 난 아니다. 난 내가 뭘 노래해야 할지도 알고, 내 목소리가 어디까지 올라갈지, 어떻게 써야 하는지 정확하게 안다, 나는 똑똑하고 용감한 여성이고, 이 행성 위에서 수십 년간 내 나름의 경험을 쌓은 사람이다, 나는 나를 충분히 통제할 수 있다고 썼다.
그리고 합창 공연에 노래 들으러 왔으면, 합창단 전체의 화음을 듣고, 좋은 소리를 내려고 하는 단원들의 열정을 봐야지, 일개 합창단원이 몸 조금 더 움직였다고 그걸 부정적으로 보는 사람이 있다면, 그런 사람은 공연을 보러 올 자격이 안 된다고 썼다.
처음에는 살짝 삐진 듯, 그럼 네 옆에 앉지 않겠다고 건조하게 한줄짜리 답장을 했다. 답장 온 건 알았지만, 내가 논문에 집중하려고 읽지 않고 답장을 안 니까, 몇 시간 후에 다시 메일이 왔다. 내가 집중하는 데 그런 동작이 필요하다면 연습시간에는 신경을 안 쓰겠다고, 공연에서만 안 하면 된다고... (내 마음 불편하게 해서 미안하다는 말은 끝까지 안 썼다. 역시 나와 친해기지는 힘든 사람이다. 진짜 사려 깊은 사람이거나 나에게 개인적인 관심이 있었다면, 합창단에 대한 열정이 앞서서 그랬다고, 내 기분 어쩔지 생각하지 못해서 미안하다고 썼겠지...)
어쨌든 더 이상 잔소리 안 하겠다고 했으니, 나도 그 사이에 마음이 조금 가벼워져서, 이해해 줘서 무척 고맙다, 공연 때는 안 할 테니 걱정 말아라. 당신은 섬세한 사람이 있으니 내가 얘기하면 들어줄 거라고 믿고 메일을 쓴 거다... 하고 내 나름대로는 외교적 뒷마무리.
합창단은 내가 논문 바깥에서 잠깐씩 행복하게 지내러 가는 곳인데, 여기서 프랑스 플레인인지, 텃세인지 내 선을 자꾸 건드리니... 결국 내가 어떤 사람인지, 내가 어떤 성깔이 있는 사람인지 또 보여주는 수밖에 없다. 그리하여 내일 공연 판매용 케이크는 달걀은 들어가지만, 버터와 밀가루 없이 가볍고 담백한 케이크, 뒤풀이용 음식으론 채소스틱과 채식 치즈맛 디핑소스를 만들어 가기로 결심했다.
논문을 통해 내가 무엇에 관심을 갖고 질문하고, 무엇에 가치를 두는지 설명해야 하는데, 불어로 나를 그렇게 표현하는 게 쉽지만은 않다. 불어만의 문제가 아니고, 압도적인 사회학의 연구전통 앞에서 외국인이고 여성이라는, 그들이 나에게 씌우는 재현에 갖히지 않고, 한국사회에 프랑스적인 연구질문을 가져와서 적용을 시키든, 혹은 프랑스 도시사회학 안에 서울이라는 새로운 필드를 꺾꽂이해서 뿌리 내리게 하든... 모두 나라는 개인이 튼튼하지 않으면 해낼 수 없는 도전이다. 그리하여 일상에서도 나를 더 적극적으로 드러내고 프랑스 사람들이 나를 더 존중하도록 에너지를 쓴다. 이 새로운 실천들이 좋은 습관이 되어 글쓰기할 때도 자연스러운 자신감으로 나타나기를 소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