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한때'에 해당되는 글 52건
- 2018.02.26 두려움을 대면하는 심장 차크라 명상
- 2018.02.20 제3의 눈 훈련
- 2018.02.09 심장 차크라 명상 입문
- 2018.01.03 존 버거 선생 1주기
- 2017.08.21 디펜스의 글쓰기
- 2017.08.11 마음 달래기.
- 2014.11.02 어떤 윤리적(?) 가르침2
- 2014.06.20 청회색 영혼들
직관력 향상까지는 모르겠고, 오후에 피곤할 때 의자에서 허리 똑바로 세우되 팔다리 긴장 풀고 앉아서 눈 감고 들으면... 낮잠처럼 머리에 불필요한 잡념과 긴장 제거해 주고 한결 마음이 편해진다. 명상 끝내고 집중도 조금 더 잘 된다. 자꾸 하다 보면 혹시 아나 직관력까지 좋아질지... (사실 직관력은 너무 발달해서 탈인 가족력이긴 하지... 서로 너무 잘 넘겨집어서 서로 짜증내는 사이. ㅎㅎㅎ)
직장생활하고 유학생활 하면서 내 주장이나 개성이 한동안 찌그러져 있었다. 그 점에 집중해서 작년부터 자기 주장을 키우는 훈련을 많이 했더니, 요새는 또 자애심이 줄어들었나 보다. 자가 치유 차원에서 심장 차크라 명상 입문. 닫아둔 마음의 문들이 열리면서 다 나은 줄 알았던 상처들이 사실 딱지 밑에 감춰져 있었던지, 다시 또 마음이 아팠다... 문 연 김에 토닥토닥 잘 아물려서 마음을 말랑말랑 부드럽게 만들어야지.
주말에 그르노블 친구집에 가서 하루 자고 왔다. 친구 올케가 심리조종자(manuplater)라 만나면 정말 피곤하다는 얘기가 나와서 한참 수다를 떨다가 열두 시 넘어서 잠들었다. 산속 마을 집이라 조용히 푹 잤는데 다섯 시쯤 예전 직장 꿈을 꿨다.
심리조정자라 하면 어디 가서 빠질 리 없을 "주간님" 출현. 또 전체회의에서 모든 직원의 업무능력뿐 아니라 개인 성격까지 지적질... 나는 회의하다 말고 아예 방으로 따로 부르기까지 했는데, 나는 방에 따라 들어가기는 했으나, 갑자기 장면 전환되며 서면으로 디펜스. 아무래도 나는 말로 하는 디펜스보다 글로 하는 디펜스가 편한가 보다.
그러고 보니 논문은 자기 주장과 디펜스의 예술. 논문 쓰는 데 필요한 자질이 한 가지는 확실히 있다고 또 긍정의 예술을 펼쳐본다. 주말 잘 보냈으니, 내일부터 또 힘내자.
내가 아무리 좋은 의도로 한 일도, 남이 어찌 받아들일지는 사실 알 수 없는 일. 내가 더 잘하겠다고 암만 호소해도, 안 통하면 할 수 일. 아쉽지만, 큰숨 한번 쉬고 받아들여야지. 그 타는 뜨거움을 더 좋은 데 쓸 열정으로 바꾸는 게 삶의 예술.
고2때 담임 쌤은 윤리교사였다. 강의 중에 잘 웃는 양반이었고, 체벌이 문제되지 않던 시절이나 체벌도 없었다. 한 단지 살고 아이가 늦둥이인 우리 막냉이와 비슷하게 어려서 동네 놀이터에서 마주치거나 집에 놀러간 적도 있다.
대학교 1학년 때 딱 한 번 스승의 날에 고2때 같은 반이던 친구랑 학교로 찾아뵌 적 있다. 때는 1학년 1학기, 학생회 활동이라기보단 이런저렁 과 행사에 많이 참여하면서 정치화되어 가던 이 두 새내기들에게 선생님은 한국노총과 민노총을 오가며 일하는 노동운동가인 친구 얘기를 했다. 한 가지 생각(정견)에 갇히지 말라는 짧은 얘기의 어떤 예로서 꺼낸 말이었다.
선생님 당신은, 풍문에 따르면, 90년대 초 전교조 탄압시 결국 못 버티고 탈퇴했던 젊은 교사였고, 대학생인 나한테 그 얘기를 했을 땐 지금 내 나이쯤 되었을 게다. 얘기의 요점은 "한 가지 생각에 갖히지 말고 계속 생각하고 활동을 이어가기"였을 듯.
선생님은 지금도 현직 교사로서 공교육개혁 시민운동에서 꾸준히 또 활발하게 활동하신다. 대학 1학년 이후로 다시 찾아간 적은 없지만, 그때 같이 간 친구랑 서른 넘어서 한 번 선생님 얘기를 하다가 궁금해져 몇 년 전 구글링으로 알아낸 근황. 알고 보니 그즈음에 <한겨레>에 간혹 공교육 관련 기고도 하셨더랬다. 친구와 선생님 한번 찾아가자 하다가 유야무야되었고, 친구는 결혼하고 나는 프랑스로 떠났다. 지금 와서 혼자 찾아갈 용기는 없지만;; 지금 이 나이에 돌이켜 보니, 그때 샘이 친구와 나에게 했던 얘기는 당신 스스로에게 했던 얘기인지도 모르겠다. 전교조 활동의 좌절이라는 틀에서 벗어나서 어쨌든 계속 활동할 공간과 동력을 찾기 위한 고민에 대한 답으로서 말이다.
어쨌든 대학시절 이후로 (내가 일부러 그 말에 매달린 적은 없지만) 나한테 어떤 참조점이 된 것 또한 사실이다. 어떤 정파에 매이지 않기... 어제 또문 30주년 생일잔치에서 선생님과 같이 활동해 온 교육운동가 김정명신 씨와 잠깐 옆자리에 앉은 김에 오랜만에 그때 그 선생님 생각을 해봤다. 이제 환갑이 다 되셨을 텐데, 건강하셔야 할 텐데...
어제 새벽 꿈. 해거름, 어떤 근린공원 한가운데 혼자 들어감. 공원 가장자리 벤치마다 늙었는지 젊었는지 확실치 않은 청회색 사람들. 영혼들이다. 영혼들이 나를 둘러싸고 바라본다는 인식에 소름이 끼치며 눈을 깜빡였다.
꿈속에서 다시 다른 꿈으로 들어간 건지, 눈을 깜빡인 덕분인지, 배경은 갑자기 어떤 학교로 바뀌고, 나는 여전히 운동장 한가운데 혼자 있다. 학교 건물 2층, 3층 창문에 교복 입은 아이들이 앉았다. 역시 청회색 몸. 무표정한 표정. 또 영혼들이다.
죽은 자들 가운데 나 혼자서 산 자라는 사실 때문에 소름이 끼치기는 했지만, 무섭지는 않았다. 저들이 순식간에 좀비처럼 변해서 내게 달려들지도 모른다는 상상이 꿈속의 내 의식을 스치기는 했지만, 꼭 그럴 것 같지도 않았다. 어쩌면 그들은 내가 그들을 본다는 사실조차 발견하지 못했을지도 모르고, 설사 알았다 하더라도 별 관심이 없었을지도 모른다. 다만, 나는 그들이 무언가 할 말이 있어서 갑자기들 모습을 드러냈을까? 그들이 무언가 말할 때까지 기다려야 하나? 먼저 다가갈 수는 없고, 위축되었던 것 같고, 숨도 못 쉬면서 눈만 움직이며 '어떻하지, 어떻하지?' 생각했던 것 같다. '겁먹지 말아, 침착, 침착.' 내게 속말하면서.
그 상황에서 나는 다시 의식의 표면으로 돌아와, 저리 많은 아이들 영혼이라면 단원고 아이들일까, 순간 질문하고 다시 의식 없는 잠으로 빠져들었다. 어쨌든 우리들이 살아가는 공간에는 산사람들만 있지 않고, 그들이 있고, 우리를 지켜본다는 느낌, 그리고 그 기억. 그리고 그 기억을 문자로 옮겨두고 싶은 욕망.
2014년 유월.